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사상 초유의 대형 테러사건을 다루는 국내 언론의 보도태도가 신속한 상황 전달 및 국내에 미치는 파장 등을 다루는데는 성공했으나,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대외정책의 강경 기조 등 이번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짚는 데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미국의 보복 공격이 가져올 엄청난 파장을 감안해 보다 냉정한 보도태도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13, 14일 주요 일간지들의 1면 제목은 ‘미 대대적 보복 공격 태세’(조선), ‘미 전쟁수준 보복 선언’(동아), “부시 모든 수단 동원 응징”(한겨레) 등 대부분 미국의 보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미국의 보복 수위에 대한 파장과 관심을 반영한 것이지만 섣부른 보복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보다 ‘미국 공격 시나리오 뭘까’(조선) 등 ‘보복’ 자체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물론 일부 신문은 사설을 통해 “테러 배후를 끝까지 밝혀 섣부른 보복이 불러올 ‘피의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이번 테러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발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슬람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을 배후로 지목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려는 미국언론의 보도태도를 그대로 ‘중계’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슬람 국가들의 반응도 “우리가 안했다”는 현상적인 부분만 소개할 뿐 중동문제에 대한 아랍국가들의 인식과 입장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데는 소홀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14일자에 “과거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한 대응처럼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며 단호한 보복을 주장하고 있는 키신저 미 전 국무장관의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유럽 언론들은 “테러에 테러로 대응해서는 안된다”(포르투칼 엑스프레소), “섣불리 테러 책임자를 지목했다가 더 큰 부정의를 초래할 수 있다”(스페인 엘패),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테러분자들에게 패배하는 길”(영국 인디펜던트) 등 미국의 섣부른 보복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뉴욕타임스까지 자국내 강경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금 필요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반미감정을 가진 세력들과 화해를 모색하는 것”이라며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국내 언론이 무차별 보복공격이 가져올 심각한 파장과 국제적 ‘위기상황’에 대해 미국 언론보다 더 조심스러워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또한 국내 언론이 이번 사건에 대한 신속한 보도와 상황 전달은 충실히 하고 있는 반면 이번 테러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는데는 소극적이라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서도 일부 언론은 사설 및 외고 등을 통해 “미국의 ‘힘의 외교와 일방주의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겨레 사설)하거나 “미국의 패권주의가 테러의 원인”(경향 장병옥 외대교수 칼럼)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기획기사나 심층분석을 통해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MD체제 강행 및 교토의정서 협약 거부, 남아공 인권회의에서의 철수, 친 이스라엘 정책 등 보수 강경 정책과 반미 감정 확산 원인을 조목조목 짚어내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동아일보가 13일자부터 ‘위기의 USA’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미국 대외정책의 문제들을 지적한 것은 발빠른 대응이었다는 평가다.
한편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서도 ‘불황 한국경제 엎친데 덮친격’(동아), ‘침체 미경제에 치명타…세계 금융시장 패닉’(조선) ‘물가 전쟁 확산땐 20~30% 뛸수도’(문화) 등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실제 주가가 테러 다음날부터 안정세를 되찾았을 뿐 아니라 과거 대형 사건사고 발생 시에도 처음의 쇼크만 지나가면 곧 이전 주가를 회복했던 것을 감안할 때 불안감을 증폭시키기보다 신중한 보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