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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 "우리의 눈을 가져야 한다"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보도 자성을

편집  2001.09.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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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눈을 가져야 한다.’

끔찍한 비극에서 광풍으로 변모한 미국 테러참사의 먼지구름이 어느 정도 잦아든 지금, 이를 집중보도한 한국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목소리 가운데 첫째는 미국의 대응을 곧바로 전쟁으로 연결시켜 우리 사회의 ‘전쟁 콤플렉스’를 과도하게 자극,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혐의다. 제3세계 국가들에겐 압제와 공포의 표상이 되다시피한 미국 항모들의 제원을 나열하고 전폭기와 지상군 규모 등을 친절하게 도열시킨 현란한 그래픽이 그같은 ‘안보 상업주의’의 상징으로 읽힌다.

아직도 전쟁의 공포를 뇌리에 간직한 세대들이 버젓이 살아있고 그들이 이른바 보수신문의 주 고객이 되는 상황에서 어쩌면 이는 자연스런 일일지 모른다. 나흘 연속 통단제목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도 충격적인 사태의 파장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을 너무 충실히 쫓았다는 비판이 들리고 있다.

일부에선 미국 언론을 쫓아 쓰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변명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결코 전폭기가 항모에서 뜨고 내리는 장면을 싣거나 전파로 내보내지도 않았고 성급하게 ‘섬멸’ 같은 단어를 내뱉지도 않았다.

오히려 붕괴 직전의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사람들이 추락하는 장면을 연거푸 방송에 내보냈다가 “또하나의 폭력”이란 항의를 받고 사과멘트를 할 정도였다.

또 민간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를 들이받는 장면을 방영하는 그 TV방송사에서 자녀들이 이 장면을 반복해서 볼 경우 모방할 가능성이 있다며 부모들에게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포연이 자욱할 것처럼 몰아붙였던 상황은 한국 언론만의‘가상현실’이었다. 사태 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전화(戰火)는 울리지 않고 있다.

피해 당사자인 미국 언론이 진중한 자세를 유지한 채 사태를 올바르게 인식시키려 노력했던 데 반해 우리는 테러 척결에는 전쟁밖에 없다는 그릇된 신념을 너무도 쉽게 되씹었다.

보복전쟁이 또다른 테러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종에 대해선 유럽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빌어서야 비로소 진정되었다.

우리 사회경제가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데다 세계여론의 흐름을 장악하는 3대 통신사, CNN 등 거대 매체를 따라잡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문제점들이 지적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때 한국 언론은 과연무엇을 했는가 하는 자성론이 이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흐름이다.

언론사마다 특파원들과 연수자들을 동원, 현장 취재망을 긴급히 가동했지만 핵심 뉴스원에 접근조차 못한 채 외곽에서 스케치에만 급급했던 점을 보더라도 한국언론의 해외취재는 한계가 명확하다. 미국 언론의 경우 수십년 동안 세계 각국에 취재망을 구축하고 관리해온 점을 고려할 때 한국 언론의 특파원 제도는 애초부터 부실 징후를 보여왔다.

더욱이 서구에 편중된 해외취재망으론 균형된 시각은 기대밖이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선입견과 그릇된 편견이 바로잡혀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과연 오사마 빈 라덴이 배후 조종했는 지는 시간이 더 흘러야 확인될 수 있겠지만 확증없이 이슬람권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이런 언론사의 침소봉대나 떠들썩한 ‘경마식 보도’와 달리 온라인 매체들이 그나마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있는 점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언론사의 기자 커뮤니티들에는 뉴욕이나 워싱턴의 교민들로부터 보내온 다양하고도 생생한 소식들이 올려져 균형을 취할 수 있게 했다.

언론사마다 특파원에 들어가는 간접 비용까지 포함하면 1억원 가까이를 쏟아붓고 있지만 그만한 생산성을 얻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이 기회에 온라인 매체의 ‘효율’을 본받는 건 어떨까. 현지 상사원이나 유학생, 기업인 등을 한 데 묶어 취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외신 보도와 취재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외신·국제부장 등이 이번 사태의 보도태도 문제점들을 점검하는 자리를 갖고 외신보도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져봄직도 하다.

한 언론인은 지식인 테러리스트의 전형을 보여준 유나바머의 경고를 인용하면서 “지구촌 변방 한국은 이토록 나홀로 안녕하다.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선진국과의 정보격차도 문제지만, 개발과 발전에 코 박은 지식수입 구조가 더 큰일이다. ‘제1세계보다 더 1세계적인’ 심리구조 말이다”(조우석 중앙일보 8월 11일자)라고 개탄한 바 있다.

이렇듯 우리는 이번 사태에서 ‘미국보다 더 미국적’이지 않았나 돌아봐야 한다. 이런 시각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오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 도시들을 종횡무진 누비는 이땅의 많은 언론사 특파원들은또다른 비극의 중계자 역할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