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분쟁상황 기자 임무는 평화 가능성 탐색"

[인터뷰]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

정리 = 김동원  2001.09.22 11:10:03

기사프린트

"전쟁의 잔학상, 전쟁의 야만성 특히 전쟁의 상업성을 폭로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상식적인 언론의 태도일 겁니다”

지난 88년부터 국제분쟁전문기자로 60여개국을 취재해 온 정문태(40) 기자(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는 임박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과 관련해 국내 언론이 관심을 갖고 보도해야 할 게 무엇인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또 현지에 파견된 기자들이 꼭 취재해야 할 사항으로는 “‘평화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전쟁광들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현지에 파견된 기자들은 “무기의 빛나는 위력을 취재할 것인지, 피흘리며 쓰러져 간 아이들의 눈동자를 취재할 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취재 중인 정 기자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 우선, 국제분쟁 전문기자라는 분야가 생소한데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언론계에 의학전문기자라든지, 환경전문기자라든지 하는 식으로 분야별 전문성에 대한 수요가 커졌고, 이런 가운데 <한겨레21>이 처음으로 국제분쟁 전문기자라는 명칭을 만든 것 같습니다. 국제적인 명칭을 꼽으라면 ‘War Correspondent’ 정도가 될 듯하고, 우리는 이걸 종군기자라고 불러왔지요. 종군기자는 주로 전선에서 분쟁(전쟁)의 상황을 취재하는 이들이라면, 국제분쟁전문기자라는 명칭 속에는 전선 취재뿐 아니라 그 분쟁(전쟁)의 속성이나 배경 같은 것들을 포함하는 보다 정치적이고 분석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군요.”

- 국제분쟁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뤄야하는 이유는.

“지구상의 어느 분쟁이라도 즉각 국제사회가 영향을 받는 현실입니다. 게다가 전쟁의 주체가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강대국들이고, 전쟁이 그들의 정치 경제적 야망과 연결돼 있는 탓에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사회의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되어버렸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국제분쟁을 분석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전문기자가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겠지요.”

- 지금 국내 언론들이 많은 기자들을 파키스탄에 파견했는데 이들의 취재활동을 어떻게 보는지, 또 아프간으로 들어가지 못해 취재에 어려움은 없는지.

“현장이 분산돼 있어 아무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다들 어려운 조건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취재하고 있겠지요. 아프가니스탄 취재는 현재 탈레반쪽에서 비자발급을 중단한상태라 현장 접근이 차단돼 있고, 상황이 풀리면 아마도 수백명의 기자들이 한꺼번에 아프가니스탄으로 몰려가는 장관을 보게될 듯한데 미국의 위력이 대단하죠?

이번 사태가 있기 전에도 내전으로 이미 1백만명 가까운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5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지금도 약 5만명의 시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는데 그런 건 뉴스가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고. 하여튼 최근 뉴욕의 건물이 붕괴되는 순간부터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회의적이고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 이번 미국의 보복공습과 관련해 현지에 파견된 기자들이 주목해야할 취재대상과 내용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평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또 전쟁광들의 정체를 탐색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게 기자들의 본업 아니겠어요? 전쟁후원이나 하라는 뜻은 아니겠지요.”

- 같은 맥락에서 현재 미국의 보복공격이 개시됐을 때 국내언론이 관심갖고 보도해야 할 사항은 어떤 것이라고 보는지요.

“전쟁의 잔학상, 전쟁의 야만성 특히 전쟁의 상업성을 폭로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상식적인 언론의 태도 아니겠는가 싶네요. 공격자를 중심에 놓는 전통적인 취재방식이나 보도 습성 같은 걸 미국언론의 흉내를 내면 안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기의 빛나는 위력을 취재할 것인지, 피흘리며 쓰러져 가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취재할 것인지는 기자의 선택에 따른 것이고 취재현장도 결정되겠지요.”

- 국내 언론들이 특파원을 파견했지만,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수준 이상은 어렵지 않나 생각되는데요. 현재 국내언론의 국제분쟁 문제를 다루는 취재 보도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어느 나라든 특히 분쟁(전쟁)분야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이 장악하고 있어요. 그 분야를 계속 물고갈 사람들이 적기 때문인데요. 문제는 우리 언론의 폐쇄성이 프리랜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좋은 기사, 좋은 사진이 중요하지 그 사진이나 기사를 만든 사람의 배경을 왜 중요하게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언론사 소속 기자들은 절대로 프리랜서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우리 언론의 공간을 확대하고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언론이 살려면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뜻인데, 내부에서도 키우고 외부인력도 활용할 수 있는 개방성이 관건이라는 뜻입니다.”

- 외신의 베끼기관행이나 이른바 ‘국적 없는’ 국제뉴스 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특파원을 가능한 많이 보내야 ‘외신 베껴쓰기’가 좀 고쳐지겠지요. 어차피 모든 걸 다 한 신문이 취재한다는 게 불가능하고 통신 기사를 받는 것도 선별의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만큼, 가령 성격이 비슷한 외국 매체들과 연대하는 방법도 하나가 되겠지요. 예를 들어 한겨레라면 인도네시아의 템포와 같은 적절한 상대가 있다는 뜻이지요.”

- 현재의 특파원 파견 양식에도 개선점이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국내인력만을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외국기자들 가운데 성격이 맞는 이들을 현지에서 얼마든 쓸 수 있습니다. 그만큼 경비도 줄이면서 좋은 제품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지요. 실제 AP통신이 그 많은 지국에 모두 미국 기자들을 파견해 놓았다고 여기면 큰 오산입니다. 현지 기자든 누구든 능력 있는 이들을 골라 쓴다는 말인데, 그것 때문에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지요.”

- 국제뉴스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도 지적해 볼 수 있겠는데요.

“문제발생은 자본의 열악함이 주된 것이겠지만, 그것보다는 협애한 민족주의가 우리 언론을 농단해 왔다는 배경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지요.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늘 한국과 관련된 내용만이 국제뉴스고 다큐멘터리라는 식이고 신문도 별 차이는 없지요. 그렇다 보니 정작 대규모 국제뉴스가 터지면 어떻게 사안을 읽을 것인지를 놓고 헷갈리게 됩니다.

사설은 코소보 때도 걸프전 때도 심지어 지진이 나도 똑같은 모양으로 권선징악을 논하고, 단골 메뉴인 반미적인 태도를 적당히 섞거나 정부 두들기는 것 또는 인도주의 한마디쯤 강조하는 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기사는 외신 받아 번역해 쓰기 바쁜 실정이 되고 말았지요.

국제뉴스전문기자가 없다는 게 치명적인 부분이 되겠고 국제뉴스에 관심 있는 기자는 그 분야를 계속 팔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국제부는 스쳐 지나가는 부서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게 문제죠. 국제뉴스가 매일 나온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정문태 기자는 누구?



88년 11월 버마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시위를 시작으로 13년여 동안 6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주로 아시아 지역의 분쟁문제를 취재 보도해 온 프리랜서 국제분쟁 전문기자다.

국내에서도 버마 아웅산수지와의 단독 인터뷰는 물론, 르완다 내전, 예맨 내전 등 그의 심층취재 기사들이 한겨레나 KBS 등을 통해 보도되는 등 국제분쟁 문제와 관련해선 사실상 국내 언론인 가운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는 베트남전 이후 사라질 뻔했던 한국 ‘종군기자’의 맥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