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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과 종군기자

최서희  2001.09.22 11: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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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얼마죠?”

“000원이요. 하나 줘요?”

“물가가 많이 올랐네…요즘 손님들 많이 줄었죠?”

“…”

“추석도 다가오는데 대책은 좀 세우셨어요?”

“아가씨 뭐 하는 사람이요? 물건 사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네?…사실은 신문사에서 나왔습니다. 추석경기가 어떤가 해서요.”

“기자 양반이면 더 잘 알 거 아니요. 추석이고 뭐고 재래시장 다 죽어가는 거.”

상인들과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일은 늘 겪는 일이면서도 나에게는 아직도 버거운 일이다. 상인들에게 기자는 단지 물건 하나 사지도 않으면서 질문만 늘어놓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상대가 기자임을 알고 있는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상당한 기술(?)과 참을성, 그리고 약간의 눈치가 필요하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단지 알고 있을 뿐 아직도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게 나의 숙제이자 시시각각 내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스트레스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나의 주요 업무는 지난 폭우로 농산물 가격이 오르지는 않았는지, 올 추석 물가는 어떤지 등을 통계청 자료보다는 늘 상인들과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 체감물가를 점검하는 것으로 경제부 초년병 기자다.

주요 출입처는 재래시장과 대형할인점.

대형할인점의 경우 밝고 깨끗한 매장 그리고 무엇보다 바깥의 더위를 싹 가시게 해 주는 냉방시설 때문에 양심에 걸리는 일이긴 하지만 취재거리를 찾아서라도 가고 싶은 출입처임을 솔직히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재래시장들은 계속 되는 경제불황과 대형할인점에 상권마저 잠식당해 연일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고 우두커니 가게 안에 앉아 있는 어두운 표정의 상인들만 눈에 띄는 형편이다.

더욱이 30℃를 훨씬 웃도는 한 여름에 시장 한 번 돌아보고 나면 그날 오후 기사 쓰는 내내 졸음과 싸워야 할 정도로 지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늘 현실이 그렇듯 대형유통점은 직접 가지 않아도 알아서 홍보물이 오는 반면 재래시장은 내가 직접 발로 뛰며 부딪혀야 겨우 시장상황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재래시장은 전쟁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최근 미 테러사태 이후 세계언론은 연일 전쟁관련 기사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누비는종군기자들이다.

그렇다면 재래시장을 출입하는 기자로서 나도 한번쯤 종군기자 같은 투철한 사명의식을 가진 기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기자는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