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신문 발행하려면 보증금 내야 한다"

한국 최초 언론법 '신문지 조례' 공개

박주선 기자  2001.09.22 11:15:53

기사프린트

신문을 발행하려면 관청에 보증금을 내야한다. 발행인, 편집인 등은 신문 발행을 위해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치안 방해, 풍속 괴란을 꾀하는 신문은 정·폐간 할 수 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 시절인 1899년 1월 만들어진 ‘신문지 조례’의 일부다. 시행되지는 않았으나 우리 나라 최초의 언론관련법으로 학계에 알려져 있는 이 법의 원안이 최근 공개됐다. 정진석 한국외대 교수가 공개한 ‘신문지 조례’의 필사본은 위암 장지연 선생의 유품에서 발견된 것으로 한지에 초서로 쓰여 있다.

조례는 총 36조로 구성돼 있다. 대강의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첫째, 신문 발행은 허가제이다. 허가를 받고도 발행인이나 편집인이 바뀌면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둘째, (액수가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신문을 발행하려면 보증금을 내야 한다. 법규 위반시 보증금에서 벌금을 떼게 되며 일정 기간동안 벌금을 채우지 못하면 발행 정지 처분이 내려진다. 셋째, 신문 발행 전에는 사전 검열을 위해 납본을 제출해야 한다. 넷째, 누구든 피해자가 요구하면 반드시 정정보도를 실어줘야 한다. 정정보도 분량은 원래 기사 크기와 동일해야 하고 피해자가 원할 경우 초과분에 대한 광고료를 내고 더 크게 실을 수 있다. 다섯째, 언론 보도를 금지한 사항들이 많다. 실례로 재판에 계류중인 사건은 보도할 수 없다. 법에 저촉되는 내용을 비호하는 논설을 실을 수 없다 등.

그밖에 행정처분권에 따르면 치안 방해, 풍속괴란의 경우 정·폐간 처분을 할 수 있다. 또 사법처분권에 따라 언론인은 명예훼손, 정치체제의 변괴 등의 혐의에 대해 6개월∼2년의 실형이나 50∼300원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정 교수는 “조례 내용이 언론규제 일변도로 돼 있다”며 “제정 전해 10월에 고종의 지시를 받고 내부(내무부)에서 1891년 일본에서 사용했던 신문 규제법을 직수입해 만들었다. 일본 신문법 역시 일본에서 3대 악법으로 불리던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석 달여만에 급작스럽게 법이 제정된 셈인데 이는 당시 외교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1898년 러시아, 프랑스 등 열강이 국내에 채굴권, 부지 조차 등을 요구하자 독립신문, 매일신문 등은 이를 폭로한다. 보도에 대해 러시아, 프랑스 등은 정부에 ‘외교기밀을 공개했느냐’며 항의를 하고, 관련자 처벌, 신문지법 제정을 요구한다. 이것이 고종이 신문지 조례를제정하도록 지시했던 배경이다.

사실상 언론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조례는 당시 신문들의 비판적인 사설, 기사를 통해 제정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독립신문 1899년 1월 10일자 사설은 “언론자유는 하늘이 주신 권리인데 어찌 진중히 보존하지 않겠는가. 어느 정부든 언론자유를 무시하면 공론이 없어지고 정부 관리들이 인민을 압제하여 국가가 위태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황성신문 3월 3일자에는 조례가 1891년 일본에서 시행하던 것이며, 국내 실정에 맞지 않아 결국 36조를 33조로 수정했다고 실려있다. 그런데 조례가 중추원의 심의까지 거쳤으나 어떤 이유로 시행이 되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 교수는 “‘신문지 조례’가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최초 언론관련법인 ‘광무신문지법(1907-1952)’이 이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며 “사실상 한국언론법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