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쌀을 지원하자고 정부에 먼저 제안하고 나섰던 한나라당이 조선일보의 비판에 직면하자 지원방침을 놓고 내부 반발이 일어나는 등 자체 혼란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언론이 환영 내지 긍정적 입장을 보였음에도 조선일보의 비판에 한나라당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데 대해 제1당으로서 당당하지 못한 태도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은 20일 “쌀 재고 과잉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의 식량사정을 풀어주기 위해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약 200만석의 쌀을 지원하도록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 국민일보, 대한매일, 세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등 대부분의 언론은 21~22일 사설을 통해 환영입장을 밝혔다. 이들 신문은 여야가 모처럼 초당적인 모습을 보였고, 특히 한나라당이 전향적으로 쌀 지원을 제안한 것은 대북정책에 좋은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조선일보의 관련 보도는 이같은 입장과 궤를 달리했다. 21일자 ‘농민 의식한 야당발 대북 쌀지원’ 제목의 해설기사에서 쌀 지원은 이회창 총재가 직접 결정한 것이라며 “당 안팎에선 ‘그동안 현 정권이 대북 퍼주기를 한다고 비판하더니 5억달러나 되는 지원을 하자니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22일자 사설에서는 “상호주의적 장치도 없이 쌀 200만섬을 지원한다는 것은 야당식 퍼주기일 뿐”이라며 “질 좋은 쌀은 당 간부에게 배당되거나 군량미로 전용되는 게 그쪽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한나라당은 24일 총재단 회의에서 해명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논의 과정이 충분히 알려지지 못해 30만톤이라는 쌀을 지금까지 우리당이 비판해왔던 퍼주기 식으로 지원을 결정한 것처럼 비춰진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 쌀의 절대부족량이 얼마인지 확인하고, 분배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 등이 이 총재 지시사항이었다고 덧붙이는 등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27일 농림부 국감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원량, 지원절차 등은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때문에 26일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이 총재의 대북 쌀지원 이니셔티브가 당내 보수세력 등의 반대에 부딪혀 오락가락하는 과정을 보면 수권정당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간다”고비판했다. 세계일보도 “무조건 지원으로 당론을 정했다가 내부반발이 있다고 슬그머니 돌아선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한 출입기자는 “조선일보 보도 이후 한나라당 내에서도 많은 말들이 오갔다”며 “결과적으로 조선일보 보도가 당내 보수파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