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장안에 괴상한 ‘소문’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사실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도 제시되지 않고 무작정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문의 진원지는 언론사 세무조사 고발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다.
방 사장은 24일 언론사 세무조사 고발사건 첫 공판에서 모두 진술을 통해 조선일보가 그동안 현정부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조선일보가 25일자 1면, 4면에 기사화한 내용이기도 하다. 방 사장은 본인 뿐 아니라 정부정책을 비판한 조선일보의 사설과 칼럼 집필진에게도 정부의 강한 불만이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방 사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조선일보 만의 문제도 아니다. 전 언론계가 울력으로 해결해야 할, 심각한 언론자유 침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태도는 상식의 잣대를 벗어나 있다.
조선일보는 정부 측에서 압력을 가한 사람의 이름도, 일시도 밝히지 않고 있다. 압력을 가한 사람의 신분이나 정체가 철저히 감춰져 있다. 또 언제, 어떤 사설이나 칼럼으로, 어떤 내용의 압력을 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장을 입증할 어떠한 정황근거도 없이 무조건 당했다는 ‘피해사실’만이 유포되고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는 이를 낱낱이 밝히라는 시민단체의 요구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은 조선일보 26일자 지면이 정부의 부당한 요구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의 이상한 행보는 지난 1999년 중앙일보가 박지원 당시 문광부 장관의 행태를 생중계하듯이 구체적으로 폭로했던 것과도 대비된다. 무려 1년 6개월 전에 일어난 사실을 뒤늦게 까발려야 했던 중앙일보의 속사정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지만 어쨌든 항간에 괴상한 소문이 나돌지는 않았었다. 지난 일을 굳이 들추자면 사주가 구속 상태였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언론이 사실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국민의 입과 귀라고 믿는다. 신문이 의혹의 안개를 걷어내기는커녕 스스로 모호한 주장을 하는 것은 독자를 혼동시킬 뿐이다. 조선일보는 지금이라도 떳떳하게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또 방 사장의 발언이 법정에서 이뤄졌음을 주목한다. 법은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만을 인정한다. 방 사장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법과 국민을동시에우롱하는 행위가 될 것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