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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인식해도 개혁실천은 '늑장'

인터넷신문 프레시안,'한국언론 2000년위' 97년 사주·편집간부 간담회 전문 공개

서정은 기자  2001.10.08 10: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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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신문을 발행해선 안된다. 무가지와 잔지를 줄여야 한다. 기자들이 외부 압력을 덜 받도록 해야 한다. 기자 전문화가 시급하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1997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 전육 당시 중앙일보 편집국장 등 언론 사주들과 주요 편집간부들은 관훈클럽 ‘한국언론2000년위원회’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한국 언론의 현실과 문제점을 이같이 진단했다. 그러나 신문사 경영 및 편집정책 전반에 대한 당시 언론사주들과 간부들의 고민은 개혁적인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결국 지금과 같은 언론사주 구속, 언론탄압 논란, 신문과 방송의 갈등, 언론시민단체와의 극단적 대립, 언론에 대한 불신이라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이 23일부터 한국언론 2000년위원회의 연구간담회 기록 전문을 공개(사진)하면서 “고민만 하다가 ‘타율’을 맞았다”고 일침을 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간담회에서 언론사주들이 진단한 한국언론의 현실과 문제점은 무엇이었는지 요약·발췌한다.

▶깊이없는 신문=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한국 언론에 불만이 있느냐’는 질문에 “언론이라기 보다는 신문에 불만이 있다”며 “정확하지 않은 기사, 깊이 없는 신문, 전문기자의 부재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육 당시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한국 신문의 가장 큰 병폐는 신문의 양적 폭증이며 10을 취재해서 100을 쓰는 것”이라며 “언론이 욕먹는 이유도 형편없는 신문을 만들면서 대단한 체 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언론 상업주의=방 사장은 “재벌신문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신문을 발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바람직한 신문은 인디펜던트 신문이다. 재정적으로 독립되지 않으면 질 좋은 신문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방 사장은 또 “외부 압력을 소화해 기자들이 영향을 적게 받도록 하는게 발행인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도 “언론의 기업적인 측면이 강조된다면 신문이 신망을 얻지 못하고 생존할 수 없다는 원칙이 현실화돼야 한다”며 “어느정도 언론이 정비돼야 한다. 그러나 언론이 정비돼야 한다고 하면 언론탄압이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입기자제 폐지=전육 전 편집국장은 “근래 많이 개방됐지만 아직 청와대 출입기자는 개방이 안됐다”며 “영역이 개방돼야 균형된 취재가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방상훈 사장과 남중구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실장도 “출입처 제도를 없애 필요한 부서에 복수 출입할 수 있어야 종합적인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공판제 도입 논란=방 사장은 “공판제는 과당판매를 줄이고 선택의 자유가 늘어나는 반면 선택의 자유가 언론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다”며 “보급권을 쥐고 있는 신문 지국장들이 언론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으므로 아직 우리 의식수준에서는 공판제가 적당한 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홍석현 당시 사장은 “공판제는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뒷거래가 가능하고 무가지나 잔지는 없어질 지 모르나 신문독자는 30% 정도 줄어들 것이므로 신문업계가 공멸의 길로 갈 수 있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지나친 부수확장=홍석현 당시 사장은 “신문협회와 4대지 편집진들에게 매달 한번씩 모여 잔지 형태를 파악해보자고 제안했는데 실시되지 못했다”며 “각 신문에서 잔지를 10만부만 줄이면 60억원을 줄일 수 있다. 공신력 있는 유관단체들이 이 부수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사 세무조사=김대중 주필은 당시 ‘언론사에 대해서 세무조사를 했느냐’는 질문에 “세무조사를 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회사가 관행적으로 해온 부분도 있는데 그후 세금문제가 다 정리됐다고 들었다”며 “세무사찰을 하고 발표도 하지 않았다. 그 의도를 알 법하다. 그런 식으로 메이저 신문의 목을 죄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