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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해맑은 '문제의식'

최창희 매일신문기자  2001.10.08 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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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관공서에 갔다가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해 이렇게 몇 자 적어 봅니다.” “30년째 매일신문을 읽고 있는 애독자입니다. 오랜 망설임 끝에 이렇게 펜을 듭니다.” “XX초등학교에 다니는 00입니다. 어른들은 왜 그렇게 전쟁을 좋아하나요….”

매일 아침 독자들이 보내온 수줍은 인사말을 만날 때마다 가벼운 설렘과 무거운 중압감이 교차한다. 독자 투고는 민심을 반영하는 창이자 신문과 독자, 독자와 독자들을 잇는 가교역할을 한다. 또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 할 수 있는 장이고 사회곳곳의 비리를 고발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정된 지면사정상 적절한 의견을 찾다보면 때로는 취하고 때로는 버려야하는 아픔이 생긴다. 하루 평균 수십 통의 이메일과 50여통의 팩스, 우편물이 쇄도하지만 실제 채택되는 건수는 기껏해야 5, 6건 정도. 그 중에는 비방에 가까운 원색적인 의견이나 음해성 내용, 편견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모두가 귀 기울여 생각해 보아야 할 탁견, 정다운 미담도 많다.

이렇듯 독자 투고의 의미가 큰 만큼 담당자로서의 역할이 쉽지만은 않다. 특히 고료를 탐내는 전문 투고꾼들의 괴롭힘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내용도 그럴 듯하고 주소나 이름을 매번 바꿔 내기 때문에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투고 내용이 타 신문사에 나왔던 내용과 같다는 사실을 모르고 여과 없이 게재하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는 아찔해진다. 담당자에게는 대형사고인 셈이다. 사고를 쳤으니 데스크의 따가운 질책과 독자들의 항의성 투고에 약간의 몸살을 앓는 건 당연한 일이다.

“글 좀 실어달라”는 회사 안팎의 부탁도 담당자를 난감하게 한다. 지금은 나름대로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지만 여전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관공서나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서비스에 대한 독자들의 불평이 실리면 대개 지적 받은 해당 부서는 발칵 뒤집히고 신문이 배포된 그 날 저녁부터 신문사 전화통은 불이 난다. “누가 썼는지 보고하지 않으면 혼난다”며 막무가내로 투고자의 신상명세를 알려 달라고 조르는 관계자들을 볼 때면 또 한번 씁쓸해진다. 지적 받은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글쓴이 색출에만 호들갑을 떠는 행정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를 실감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사리 손으로 깨알같이 적어온 꼬마들의 진지한 투고를 읽다보면 살며시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편견이 담기지 않은 이들의 해맑은 ‘문제의식(?)’이 우리 사회의 내일을 반추한다는 생각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