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을 그만두자 평소 때 친하게 지냈던 취재원들의 연락도 뜸하고 그들의 시선마저 차갑게 느껴질 때의 씁쓸함을 생각하니 20여년 동안의 언론계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
“이제 대한민국에 참다운 언론이 한군데도 없어졌다.”
전자는 모언론사 간부 출신인 한 정치인이 기자에게 한 하소연이고 후자는 최근 기자를 만난 한 언론학자가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언론의 보도태도를 보며 탄식한 말이다.
이는 현직시절 취재원과의 관계가 신의를 바탕으로 한 것보다는 ‘언론 권력’이라는 매개가 엮어준 극히 정략적 관계를 경계하라는 교훈이 담겨져 있다.
후자는 세무조사를 당하더라도 ‘자사 보호’ 기사를 쓰지 않는 참다운 언론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국민들이 믿고 의지할 언론이 한 군데도 없어져 버렸다는 말이었다.
언론도 서비스업이다. Service라는 단어의 어원은 ‘Serve’ 즉 ‘섬김’이다. 언론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해야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정보’라는 상품을 독자에게 파는 서비스 업종이다. 외환위기 사태이후 언론의 수익구조가 문제로 대두되면서 언론종사자들 스스로도 상당부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신문은 독자들에게, 방송은 시청자들에게 올바르고 좋은 정보 ‘상품’을 제공하고 독자나 시청자들은 이에 대한 일종의 대가를 지불한다. 이런 이유로 언론은 서비스업이다. 이런 언론이 요즘 국민들로부터 개혁대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결국 따지고 보면 ‘섬기겠다’는 자세보다 ‘섬김을 받겠다’는 서비스정신의 부재가 문제의 발단이 아닐까 생각된다.
“요즈음 기업에 진출한 기자출신 홍보인들은 10년이 걸려야 기자에서 홍보인으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더라”는 웃지 못할 동료기자의 얘기는 ‘섬김 받기’에 익숙한 우리 기자들의 현주소를 꼬집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기자 근성’ 운운하며 권위적 취재 관행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물론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만큼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에 역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서비스는 신뢰가 전제돼야 진가를 발휘한다. 이같은 논리는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확고히 구축된 이른바 선진국일수록 더욱 그렇다. ‘존경은 신뢰에서부터 싹튼다’는 보편적 진리가 추락한 우리 언론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서는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언론개혁은 언론인 스스로가 취재현장에서나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을 개선하는 도덕재무장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필자부터 취재원들에 대해 좀더 겸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