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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시민단체 의혹 제기땐 외면하더니…

정치인 폭로하자 '대대적' 보도

김상철 기자  2001.10.20 11: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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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희 한나라당 의원이 16일 제기한 백궁지구 도시설계 변경 의혹과 관련, 언론이 성남지역 시민단체에서 99년 이같은 문제를 제기했을 때에는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시 성남시민들이 서명운동, 시장 소환, 헌법소원 등 반대운동을 펼칠 때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정치인이 폭로하자 마치 ‘새로운 사건’이 터진 듯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언론보도가 그나마 99년에 거론된 내용 외에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의혹 부풀리기’만 거듭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박 의원이 대정부질의에서 성남시 백궁·정자지구 도시설계 변경 과정을 둘러싼 의혹을 제기하자 대부분의 언론은 ‘제2의 수서사건’이라며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성남시가 99년 12월 백궁·정자지구 일대 3만9000여평에 주상복합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하는 과정과 이에 앞선 5, 6월 이 땅을 집중 매입한 H건설회사 등이 수천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것에 여권 실세가 개입됐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17일자부터 연일 관련 기사를 1면에 올렸다. 당시 토지공사가 용도 변경된 백궁·정자지구 8만6000평 중 3만9000평을 H개발과 수의 계약했다는 사전 밀약설 등의 보도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국민일보, 한겨레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이 사설을 통해 의혹 규명과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현재 보도되고 있는 내용들은 지난 98년부터 한겨레가 다뤄왔던 사안이었다. 한겨레는 99년 10월 12일자에 설계변경과 관련 성남시와 토지공사의 뒷거래 의혹을 제기했고 같은해 12월 ‘성남판 수서비리인가,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인가’ 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게재했다. 수도권판에는 이미 98년 9월부터 지난해까지 10여차례에 걸쳐 관련 보도를 계속했다.

한겨레는 일련의 기사에서 H건설회사 건이나 토지공사 사전 밀약설 등 최근 보도되고 있는 사안을 설계변경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과 시민단체에서 제기한 의혹과 함께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반면 다른 신문들은 성남시의 설계변경 방침을 ‘분당 백궁역 주변 본격 개발’, ‘미분양 업무용 땅에 복합건물 들어설 듯’ 등으로 단순 보도했다. 경향신문, 문화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은 한두차례 주민 반발과 성남시 입장을 쟁점 식으로 처리하는 데 그쳤다.

이와 관련 설계변경 문제를 보도해왔던김기성 한겨레 민권사회1부 기자는 “여권인사 개입설도 99년 시민단체에서 제기했던 문제”라며 “현재로선 이전 보도 외에 추가 사실이 확인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또 “8만여명이 반대서명에 참여하고 시장 소환, 헌법 소원을 추진하는 등 당시 시민들의 반발은 대단했다”면서 “그때는 별다른 보도를 않다가 한 의원의 폭로로 뒤늦게 경쟁적으로 보도에 나서는 모습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성남 지역언론의 한 관계자도 “현재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내용들은 99년 시민단체를 통해 다 제기됐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에도 시민단체에서 정당 등 관련기관에 문제점을 전달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언론이 뒤늦게나마 이 문제를 다루면서도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채 ‘의혹 부풀리기’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출입기자는 “문제가 있으면 이를 보도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야당에서도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면서 “언론이 단순히 추가 폭로를 기다리거나, 정치권에 놀아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