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교양강좌' 듣고 언제 전문성 기르나

언론사 재교육 교양 수준… "뭘 들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서정은 기자  2001.10.20 00:00:00

기사프린트

"저번 연수 때 뭘 들었더라?”

몇몇 기자들에게 최근 참가했던 사내 연수 프로그램이 어땠는지 묻자 “기억이 잘 안난다” “할 말이 없다”는 반응이다. “신입사원 연수 이후 5년만에 처음 사내 연수를 받았는데 기본적으로 다 알고 있는 평이한 교양 수준이었다. 그러니 머리속에 뭐가 남겠나.”

기자 재교육에 대한 언론사 투자도 미비하고, 연수기회가 생겨도 과중한 업무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사내 기본연수마저 교양강좌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내 기본연수가 초보적이고 상식적인 교양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교육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최근 언론재단이 기자 78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언론인 의식조사’에서 재교육 요구과목을 조사한 결과 91.2%가 ‘분야별 전문지식’을 지적, 자신이 담당한 분야에 대한 교육 요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 언론사들이 실시하고 있는 연수 내용은 기업문화와 관련된 교육, 방송 관련 강좌, 외부 전문가 초청 특강 등 백화점식의 일반 강좌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한 방송사 연수담당자는 “직종별로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재교육 시스템이 수립돼지 못해 주먹구구식 연수가 이뤄지고 있어 솔직히 기자 전문화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언론사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원하는 커리큘럼에 대한 체계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하거나 일반 기업들처럼 컨설팅을 통해 총체적인 인력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곳은 거의 없다. 또 KBS나 MBC 같은 규모가 큰 방송사는 자체 연수시설을 갖추고 교육 전담 부서에서 기본연수와 직무연수 등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대부분 신문사는 신입사원 연수 이외의 사내 교육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상태다. 또 인사팀과 총무팀 직원 한두 명이 연수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대부분 외부 기관이 지원하는 해외연수나 언론재단 위탁 연수에 의존하고 있다.

한 신문사 정치부 기자는 “회사의 자체 연수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결국 외부 연수를 따내야 하는데 솔직히 기약 없어 보인다”며 “각 사별로 연수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자연히 외부 연수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연수 신청도 눈치 보면서 ‘차례’ 를 기다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신문사 경제부 기자도 “발행인이나 간부들이 ‘공부하는 기자가 돼야 한다’고강조하면서 정작 내부 재교육 프로그램은 없고 개인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또 연수 기회가 있어도 과중한 업무와 데스크들의 인식 부족으로 참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KBS의 한 연수담당자는 “기자, PD, 아나운서, 카메라 등 4개 직종 가운데 기자들에게 쓰이는 연수 예산은 10% 정도이며 전체 직종과 비교하면 2∼5%에 불과하다”며 “지난 7월에 열린 사이버연수에 참가한 746명 가운데 기자는 34명으로 4.6%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기자들에게 1순위로 연수기회를 주고 원하는 커리큘럼을 요구하고 참여를 독려해도 업무에 쫓기고 데스크가 보내주지 않아 기자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이다.

한 방송사 기자는 “대부분의 간부들이 기자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총론에는 동의하면서도 정작 연수기회가 있으면 보내지 않는다. ‘내 밑에 있는 동안은 일만 하라’는 식이다”라며 “간부들이 기자들에게 재교육 기회를 제대로 보장하는지 여부도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등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KBS 방송문화연구원이 호주대사관과 공동으로 ‘선진방송사연수’를 기획했으나 본사 보도국 부장들이 “기자들을 4주씩이나 외국에 내보낼 상황은 못된다”며 다같이 보내지 않기로 결의, 연수를 희망했던 기자들의 불만을 샀다.

한 방송사 연수담당자는 “간부들이 연수를 잘 보내주지 않자 일부 기자들은 아예 휴가를 내고 데스크 몰래 연수에 참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광범 언론재단 언론연수팀장은 “방송사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자체 연수원을 운영하는 게 가능하지만 300여명 규모의 신문사들은 연수업무만을 담당하는 인력을 배치하기 힘들다”며 “소규모 언론사들이 일정부분을 투자해 공동으로 재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저널리즘 스쿨’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또 “아무리 교육의 기회가 많아도 기자 수가 늘어나지 않으면 연수도 업무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올 수 밖에 없다”며 인력충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