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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기자들이 그리는 자화상

변화하는 사회 따라잡지 못하고 허덕이기만

김상철  2000.11.08 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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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론사 편집국장은 연말 술자리에서 "요즘 기자들이 너무 편향적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권력을 지나치게 추종한다든가, 지나치게 비난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다른 언론사 고위 간부는 올 언론계 사건들을 겪으면서 "기자사회의 위기를 심각하게 느낀다"고도 했다.



"후배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군사독재의 강압에도 맞서 싸웠는데 왜 지금 와서 이러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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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펭귄 맞아?" "그럼 맞고 말고. 넌 펭귄이지." "근데 난 왜 춥지?"



기자를 둘러싼 각종 비리와 의혹들이 다시 언론문건 사건으로 이어질 무렵 한 기자는 철 지난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했다. 자신도 되물어봤다는 것이다.



"나, 기자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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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맞냐고? 기자가 뭔데? 정말 기자란 뭘까. 발행인에서 평기자까지 각종 사건이 꼬리를 물었던 1999년 기자들은 새삼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을 한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내친 김에 언론사를 떠돌아다니며 물어보기로 했다. 기자들은 그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자란 무엇인가. 그리고 기자사회는 지금&.







언론문건 사태로 신뢰 무너져



"기자란 뭐? 고민할 만한 문제네." "그런 거 묻지마. 골치 아파." "할 얘기 없다." 먼저 이런 일차적인 반응을 헤쳐나가면 다음엔 지극히 '사적이고' 냉소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기자란? "앵무새." "전달자, 그것도 왜곡 많이 하는 질 낮은 전달자." "저급한 정보딜러." 더러 '곧은 소리'도 있었다. "기자는 여전히 지사여야 한다.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있는. 그렇지 않으면 기자라고 하지 말고 다른 직함을 가져야지."



물론 이같은 반응들은 일련의 언론계 사건에서 비롯된 바가 짙어 보였다.



"이도준, 문일현 기자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갔다.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가 활성화하는 마당에 그나마 언론을 지탱시켜 준 것은 '신문에 그게 났더라'하는 기본적인 신뢰였다. 이들은 언론을 언론이게 하는 최소한의 근거를 스스로 무너뜨려버렸다."



한 기자의 성토다. 이 기자는 "구조개혁, 제도적 장치 운운하며 기자들을 일일이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최종적으로는기자 의식의 문제"라며 "적어도 기자라면, 최소한의 기본적인 질문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왜 이 기사를 쓰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출발점'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한 기자는 "이도준, 문일현 사건 갖고 왜 기자사회 전체가 반성하고 위기를 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극히 일부분일 뿐 기자 전반이 그렇지 않은 건 분명하다"며 "단지 뽑을 때 잘 뽑아야 하고, 그런 인간들이 아직 있으면 빨리 나가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 신문사 차장도 "두명의 희귀한 사례를 가지고 기자 정체성의 위기, 언론계 전체의 대오각성 운운하는 것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신랄한 자기비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파워그룹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기자들은 여전히 출입처에서 그들이 흘려주는 보도자료나 받아 적고 있다. 이렇게 변하지 않으니 올해 일이 그렇게 많이 터진 것이다. 사회는 변화하는데 여전히 하던 식대로 하다 보니 일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기자될 수 있는 사회



"올들어 특히 많은 일들이 터졌다고는 하지만 언론계 비리 사건도, 여러 언론개혁 요구도 예전부터 있어 왔다. 요구하는 데선 계속 요구하고 현장에서는 하던 대로 답습하는 양상만 되풀이되고 있다."



"아직까지 자신들이 기득권층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그 많은 일들이 터졌어도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잖은가.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그것이 문제다. 더 심화될 수밖에 없고 더 처절하게 당해봐야 한다."



이건 자학 아닌가, 싶을 만큼 더한 발언도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일일이 다 열거하며 지면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여기서 멈추자. 요는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답습하고 있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기자들이 바라보는 변화양상은 어떤 것인지 알아봐야 했다. 물론 이른바 디지털시대라는 기술적인 변화에 따른 전망이 앞섰다.



한 기자는 "특히 인터넷의 급부상으로 기자 위상도 급변할 것"이라면서 "기자는 정보의 1차 생산자 역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클라크식으로 정보산업을 3분하면 1차 정보 생산, 2차 정보망 구축, 3차 정보를 이용한 각종 서비스 역 가운데 기자는 정보의 생산자다. 어떤 것이정보가 되고어떻게 그것을 정리·가공해 제공하는가 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 될 것이다." 다소 기능적인 분류인 셈이다. 하지만 정보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다.



또다른 한 기자는 "인터넷 신문 창간 등을 볼 때 이제는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게 된 것 아닌가"라며 "물론 그같은 '경쟁관계'에서 너무 읽히는 기사, 돈 되는 기사 위주로 가는 편향은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래도 기자 본연의 임무는 남는다. 이 기자가 정리하는 기자의 임무는 첫째 사회 감시, 둘째 정보 처리, 셋째 방향 제시 기능이다.



"특히 기자로서 기본적인 전달 이외에 현실의 트렌드를 짚어내는 세 번째 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역사는 역사학자가 정리하겠지만 역사로 이어지는 현실의 양태는 역시 기자가, 언론이 정리할 수밖에 없다."



한 신문사 기자 역시 "사회의 다양한 사건과 그 스펙트럼을 취재하고 종합해 하나의 트렌드로 정리·파악하는 역할은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기자들의 몫"이라면서 "이런 역할은 기자들이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문제는 전문성인가. 확실한 건 단순한 정보 전달자로는 더 이상 의미를 얻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젠 기자도 자기 전문분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 언론사 차장은 이런 예를 들었다.



"한 시민단체에서 정책 자료집을 냈다고 치자. 그러면 그걸 그냥 보도하고 말 것인가. 이젠 인터넷 등 시민단체가 자체적으로 알릴 수 있는 네트워크도 얼마든지 있다. 분석하고 해설하는 기능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다른 한 기자는 기자들의 전문화를 떠나 신문 자체가 전문화돼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문화든 경제든 사람들의 식견이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가. 문화 분야는 매니아들이 넘쳐나고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를 다 얻는다"면서 "정작 이런 변화를 내부에서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다는 말이 또 나왔다. 여기까지가 몇몇 기자들이 펼쳐놓은 전망이라면 다시, 여기 기자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못다한 내부 비판이 이어진다. 그리고 많은 기자들이 기자사회의 위기를 이야기했다. 편집기자에서 취재기자로 '전향한' 한 기자는 지금에야 더 적나라하게 현실을 느낀다며 이렇게얘기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젠 '기자가 인간이냐' 하는 말도 나온다. 여기서 들은 정보, 저기 가서 얘기하고 하는 모습이 흔하다. 그래서 재화도 얻고 입신양명을 구하려 한다." 정말 이 정도로 심할까. 정말이라면 왜 그리 막가는 것인가. 이 기자의 분석은 간단하다.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근본 문제는 기자윤리를 떠나 기자직에 대한 전망을 잃었다는 것일까. 여기까지 오자 샐러리맨으로 전락 운운하는 익숙한 한탄과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식의 분석이다.



"전망이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전문화든, 트렌드 분석이든 나이를 먹어도 계속 취재하고 기사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자에게 부여된 소중한 역할인데 40대만 되면 선택받은 몇몇이 데스크에 앉고, 거기서 끝 아닌가. 현실적으로 역할에 맞는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지 못하고 있다."



사주로 통칭되는 회사의 '관리 시스템' 강화도 기자의 전망 부재, 무기력을 낳는 주요인으로 지적됐다. 기자들이 제시하는 관리 시스템은 사주를 정점으로 한 계파, 연줄에서부터 인사고과, 연봉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한 신문사 차장은 "이제 기자사회의 해체는 엄연한 내부 경향으로 실재하는 것 같다"며 "특히 IMF 이후 대대적인 감원-뒤이은 증면 등에 따른 업무량 증가와 함께 광고와는 또다른 자본, 사주와 회사의 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 이같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찾기 쉽지않은 탈출구



과연 탈출구는 없는 것인가. 이 차장이 내놓은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권력은 권력 나름대로, 자본은 자본대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언론 역시 또하나의 권력기관으로 구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판을 뒤엎을 젊은 기자들이 있을까. 최근 수년간 공채들을 보더라도 이른바 언론고시를 거친 토익 850~900점 이상 주요 대학의 고학점자들만 들어오고 있다. 그런 채용 과정을 거쳐 기자로 충원되고 다시 이를 관리하는 기존 회사 시스템에서 근무하는 과정 속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그렇다면 다시, 이런 여건 속에서 기자란 정말 무엇인가. 묘하게도 두 신문사 노조위원장은 먼저 '밥'의 문제를 들며 정체성은 그 다음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한 노조위원장은 "확실한 건 생활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자도샐러리맨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지사적 운운하는 대의명분의 시대였다면 특히 IMF 이후 철저하게 실용적인 의식이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



"먼저 기자도 생활인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이제까지 가져왔던 사회의 공기와 같은 정체성이 허구였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보다 처절하게 깨져나가면,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서 정체성이 정립될 수 있을 것 같다."



또다른 노조위원장도 "먼저 기자들의 신분 보장을 포함한 생활이 담보돼야 한다. 그래야 정체성을 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 기자들은 사주가 급여를 적게 준다 해도 그저 자기 능력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머지는 기자의 자존심으로, 사명감으로 버티겠다고 자위한다면 달라지는 건 없다.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사주에 맞서 그것을 확보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초석'을 세우는 일이 절실하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변화나 개선에 앞서 투철히 반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는데 지금은 반성도 제대로 않고 있는 상태다. 현실 변화와 외부의 변화 요구를 제대로 체감하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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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기자란 무엇일까? 애초에 정답을 구하기엔 너무 어려운 문제였나. 적어도 기자 정체성의 위기라는 규정이 허락된다면 그나마 정리할 수 있는 건 세 가지다.



면면히 흘러오던 정체성을 잃어버렸거나, 애시당초 없었거나, 변화양상 속에서 새로운 기자상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언제였나, 중학동 순대국집에서 어느 선배에게 점심을 얻어먹고 있을 때였다.



"기자야 생각이 바로 서면 되는 거지. 이 사회에 문제가 얼마나 많이 널려 있냐. 여기만큼 기자하기 좋은 데도 없는 거야&."



침묵을 깨고 점심시간임에도 텅 비어있는 식당을 지키던 주인 아주머니가 말을 꺼냈다.



"이번달 또 적자네. 연말엔 오히려 사람들이 안 와요. 다들 술 먹고 회식하러 가지 누가 이런데 와. IMF 갔다지만 다 거짓말이야. 잘 사는 사람 더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살게 된 거 같다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아주머니께서 아주 정확히 보고 계시네요" 하자 주인 아주머니가 바로 말을 받았다.



"그럼.여기에선 내가신문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