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보복공격과 관련한 미 행정부의 보도통제를 둘러싸고 국익과 국민 알권리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미 언론들은 대체로 ‘국익’ 차원에서 백악관의 보도통제 요청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일부 언론사와 언론단체들은 정보 제약 및 차단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국제기자연맹(IFJ), 전미언론협회(IAPA) 등 현업 언론인들도 기자들의 사건 취재에 가해지는 정부의 압력을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보복공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군사 작전과 관련한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정보를 공개할 경우 군사 작전은 물론 국민들의 안전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이 과정에서 부시 미 대통령과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보도자제 신사협정을 맺었다. 미 언론들은 대통령 일정을 포함, 군사 기밀사항이나 국가안보 등 예민한 정보나 자료를 기사화하는데 신중을 기하고 보도를 자제한다는데 동의했다.
이와 관련 일부 미 언론이 미 국방부에 아프간 공습 전과 및 증거를 공식 요구할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 포스트지의 필립 베넷 부국장은 “현재 보도 상황이 실망스럽다”고 지적했으며 ABC 뉴스의 폴 프리드먼 부사장은 “국방부에 대해 ‘우리가 (전과) 증거를 볼 수 있는가’라고 외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ABC, CBS, NBC, CNN, 폭스 등 미국 주요 방송들도 지난 10일 미 테러 배후 혐의자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메시지와 그가 이끄는 무장 조직 알카에다의 성명을 생방송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빈 라덴이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테러 행위를 조직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익을 위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백악관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어 BBC, INT 등 영국 방송사들도 15일 빈 라덴의 영상자료 사용시 주의를 기울인다는데 합의했다.
이에 대해 전미언론협회(IAPA)는 16일 ‘언론자유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알자지라 방송에 대한 자체검열은 미국이 존중하는 언론자유의 가치에 대해 그릇된 메시지를 이슬람 국가들에게 보낼 뿐 아니라 미 국민들의 알 권리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국제기자연맹(IFJ)도 12일 성명을 내고 “아프간 군사행동 관련 사건 취재에 가해지는 각국의 정부 압력을 중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에이든 화이트 IFJ 사무총장은 “전문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분쟁상황에서 기자들은협박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미디어에 가해지는 정부 압력이 종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IFJ는 또 아랍 위성방송인 ‘알자지라’의 자료사용에 주의를 요하라는 미 부시 정부의 요구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IFJ는 “미국과 아랍의 기자들은 정부의 어떤 지시도 필요하지 않다”며 “미디어가 선전활동의 일환으로 오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편집권의 독립이지 결코 얄팍하게 가려진 검열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 정부와 언론간의 보도자제 협정은 국내 보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허원제 SBS 국제부장은 “현장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서방언론과 ‘알자지라’ 방송 등에 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미국의 보도통제로 인해 소스찾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김진호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는 “빈 라덴이 테러범이라는 근거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 정부가 보도를 통제하는 것은 결국 모든 정보를 차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알자지라 생방송을 자제하면 미국쪽 주장만 일방적으로 전달, 결국 이러한 매체를 접하는 시청자들은 균형잡힌 시각을 얻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