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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연구하고 친목도 도모하죠"

기자들 '공부합시다'… 전문화 열풍

박주선 기자  2001.10.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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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6시 연합뉴스 기자들이 하나둘씩 7층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홍순직 삼성 SDI 부사장의 강의가 있는 날이다. 주제는 재무제표 읽는 법, ‘재무제표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홍 부사장의 강의는 시작됐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자부터 갈색 염색기가 있는 젊은 기자까지 50여명의 ‘학생’들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연합뉴스 경제국은 앞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한 차례씩 총 20여회의 교육을 더 실시할 계획이다.

부실한 언론사 재교육 프로그램 탓에 입사 이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이같은 공부 모임은 반가운 일이다. 사내에서 부서별로, 관심사별로, 사외에서 출입처별로 구성되는 공부 모임은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친목도 도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어 더욱 그렇다.

한국일보 경제부는 연합뉴스보다 조금 더 빨리 공부를 시작했다. 올 6월부터 2주에 한번씩 저녁 시간을 이용해 공부를 한다. 대체로 경제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는 방식이다. 강사들로는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KTF 등 정부기관이나 기업체 인사들이 많다. 강사료 등의 비용은 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지만 교육 내용, 강사 선정 등 실질적인 프로그램은 배정근 경제부장이 부서원들의 의견을 모아 구성한다.

앞선 두 사례가 특정 부서가 중심이 된 공부모임이라면 중앙일보의 ‘서브컬쳐연구회’는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6명으로 구성된 이 모임은 만화, 락 등을 보고 들으면서 문화연구를 한다. 요즘에는 일본 만화를 보고 일본 문화 읽기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다.

중앙일보에는 이외에도 ‘동아시아연구회’(5명), 편집연구를 하는 ‘심마니’(6명), 지방주재기자가 중심이 된 ‘지방자치연구회’(5명) 등의 공부모임이 있다. 모임은 팀별로 자유롭게 운영되는데 올 6월부터는 회사에서 소정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회사측은 운영비 지원의 대가로 결과물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지원비의 60% 이상은 반드시 책 구입비로 사용하도록 했다.

비공식 공부모임이 사내 공식팀으로 승격한 경우도 있다. 경향신문 인터넷팀은 지난해 2월초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등 몇몇 부서에서 7명의 기자가 모여 인터넷 관련 공부를 하다 박명훈 편집국장의 제안으로 지난해 3월부터 공식 직제에 포함됐다. 사내 인터넷 마인드 강화와 인터넷 관련 기사거리를 발굴하는일종의 TF팀이다.

팀 구성 초기에는 기초지식 습득을 위해 주 1회씩 인터넷 관련 서적을 읽고 토론을 했다. 이후에는 인터넷 관련 업체 실무자, 시민단체 상근자, 교수 등을 초청해 강의를 듣는 형식으로 공부를 해 나갔다. 그러나 올 4월경 LG상남재단의 지원으로 기자들을 위한 인터넷취재 핸드북 가이드를 발간하기로 하면서 요즘에는 매주 화요일 저녁 세미나 위주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팀은 팀내 공부뿐만 아니라 지난해 7월 사내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올해 2월에는 정보통신 분야를 담당하는 4명의 기자들이 공부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모임의 대표격인 윤한성 파이낸셜뉴스 정보과학부 기자는 “정보통신 분야를 취재하다 보니 전문용어도 많고 해서 용어라도 알고 보도하자는 취지로 경제지 기자들을 중심으로 공부모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외부강사 초청없이 대개 2∼3주에 한번씩 정보통신 관련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이는데 이미 15권 가량을 섭렵했다. 이들은 관련 분야 공부뿐만 아니라 “기술이 아닌 사람 중심의 보도를 하자”는 취지로 용어 바로잡기에도 적극적이다. 한 예로 ERP를 기존의 ‘전사적자원관리’ 대신 ‘기업지원관리’로 기사에서 표기하고 있다. 모임이 내실을 기하면서 관심을 보이는 기자들도 더 늘어나 현재는 8명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행 기자실도 공부에 관심이 많은 곳 중 하나이다. 출입기자단 내에서 기자단비를 회식비로 쓰지 않고 모아 올초부터 수 차례 경제전문가 초청강연을 벌였다. 최근 몇 달간 초청강연이 주춤해졌지만 연말께 다시 부활한다는 계획이다.

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전체 기자들을 상대로 월 1∼2회 가량의 초청강연을 실시하는 언론사도 있다. 대한매일은 올 1월부터 매월 한차례씩 월례특강을 개최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에는 미 테러 사건과 관련,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를 초청해 기자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올 7월부터 월 2회 특강을 실시하는 부산일보는 박형상 변호사(명예훼손), 박원순 변호사(시민운동과 언론), 이민규 교수(정밀저널리즘의 도래) 등의 강의를 기자들에게 선보였다.

이외에도 개별적으로 한국개발원, 카이스트 등의 특별 과정, 특수대학원 등에서 공부를 하는 기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전문화시대가 가속화하면서 기자들의 공부 열풍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