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이하 박)─21세기 첫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반성하는 차원에서 얘기를 끌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현업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언론의 보도태도를 어떻게 보는가.
강병태(이하 강)─90년대 이후 내부 비판 등으로 진일보해 온 국제보도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후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테러사건이 미국 내에서 발생했고 미국이 유사이래 처음으로 피해자가 됐다는 인식에 압도당한 것 같다. 객관보도나 검증 등을 포기한 것이거나, 생각은 있지만 공개적으로 거론할 용기를 갖지 못한 것 아닌가하는 판단이다.
이기정(이하 이)─압도당한 측면이 있었다. 방송의 경우 미국과 거의 동시에 속보를 내보내는 등 신속대응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누가 CNN을 빨리 동시 통역하느냐, CNN을 누가 빨리 연결해서 방송을 끌어나가느냐의 경쟁이었다. 그 사건을 어떻게 우리의 시각으로 볼 것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박─미국이 당한 게 중요한 사실이긴 하지만, 문제는 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그 중심적 이유에 대해 탐구하지 않은 점이다. ‘why(왜)’라는 물음은 제쳐두고 현상을 좇는 데 급급했다.
강─TV에서 보여진 충돌장면 등의 충격이 워낙 커 일부 서구언론이 이 사건의 의미와 성격을 문명의 충돌이라거나 이슬람과의 대결이라고 평가한 것까지 따라가 객관적인 보도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사건이 갖는 충격에 사로잡혀 과거 유사한 국제 분쟁 때 견지했던 객관적 검증 자세를 놓쳤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건이 코소보 전쟁이나 걸프전, 그리고 팔레스타인 전쟁과 월남전 등 과거 분쟁이나 전쟁들과 비교할 때, 우리 언론이 국제분쟁이나 전쟁을 보는 기본 시각과 검증하려는 자세를 잃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역사적이었는가는 의문이다. 아무리 큰 사건이라 해도 국제보도에서 검증은 기본이다.
이─방송이 기본적으로 감상매체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제작 과정이 상당히 어렵다. 시청률도 의식해야 한다. 난민 문제 다루고 이슬람 목소리도 전하려고 노력하지만, 이것이 과연 시청자의 눈길을 끌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시청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런 한편으론방송의 보도내용을 보면서 우리가 왜 미국 언론보다 흥분해야 하는지 자괴감도 느꼈다.
강─외국 언론은 선정적 상업지와 정론지로 구분된다. 하지만 우리의 신문 방송은 심오한 척 해설하거나 심층 보도하는 동시에 선정적인 상업주의적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실례로 사건 첫날 미국 당국자가 ‘테러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거나 ‘빈 라덴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성 발언을 하자 우리 언론은 외신의 가장 단정적이고 자극적인 부분만 골라 범인을 빈 라덴이라 단정하고 그의 프로필까지 실었다.
그런데 영국의 BBC는 첫날 보도에서 범행이 내부소행이냐 아니면 외부소행이냐에 먼저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기사의 절반 가까이를 지난 96년 오클라호마 청사 폭발사건을 유념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채웠다. 이 사건도 처음엔 빈 라덴이 지목됐다가 3일만에 티모시 맥베이가 범인인 것으로 판명된 경우였다.
우리 언론은 이런 문제제기 없이 빈 라덴으로 규정하고, 그 다음날엔 미국의 보복공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이틀 뒤엔 신무기까지 다뤘다.
이─언론이 ‘제목 장사’에 치중하다보니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진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다보면 제목이 안 잡힌다. 사건의 배경을 짚거나,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라덴이 했다는 증거를 미국이 충분히 갖고 있느냐는 식으로 얘기를 풀어나가면 제목장사가 안된다. 그래서 전쟁 ‘초읽기’, ‘임박’하는 식으로 다루게 되는 것이다.
박─지금까지 얘기는 우리 시각의 부재와 선정성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시각 부재의 문제는 뒤집어보면 언론의 전문성 부재 문제인데, 국제정세나 중동정치 등 특정분야에 대한 지식의 부재 등을 지적할 수 있겠다. 촘스키 교수는 이번 사건을 50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비록 형태는 정상적이지 않았지만, 서구인에 의한 비서구인 지배의 500년 역사 동안 처음으로 반기를 든 사건이라는 것이다.
강─관점을 좀 달리해 말하겠다. 언론 보도를 보면 사건의 인명피해나 그 충격성을 다룬 뒤 문제의 원인에 대한 진단 없이 곧바로 서구와 이슬람의 충돌 논쟁으로 옮겨갔다. 또 미국이 왜 이번 공격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개념화, 추상화하는가에 대한 분석도 소홀했다.
걸프전 때도 그랬지만, 석유를 중심으로 이미 19세기 이전부터 지속돼오고 있는 전략적이고 지정학적이인 요인을 고려한 뒤 공격의 명분을 얻기 위한것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분석은 거의 없다. 테러사태 자체도 문제이지만,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 역시 철저히 계산된 전략에 따른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미국 정부의 홍보 조작, 언론 통제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국내 언론은 검증하지 않고 미국 언론보다 더 앞서간 느낌이다. 우리 시각이란 특별한 게 아니다. 역사적이고 전략적인 측면을 분석 평가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그게 바로 국제부 기자들의 고민이다. 우리 시각이란 얼마나 진실에 가깝게 보도하느냐의 문제인데, 국제부 기자들은 업무성격상 사실(팩트)에 굶주려 있다. 남의 입을 빌어서라도 사실을 전달하려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아니면 말고’하는 식의 불감증에 걸리게 된다.
박─역사가들도 사료비판을 한다. 해당 자료가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갖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뉴욕타임스나 더 타임스 같은 외국의 권위지와 뉴욕포스트나 선데이텔레그라프같은 매체는 격이 다른데도 선정적인 것을 좇아 기사화한다.
강─최근 파키스탄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쿠데타설이나 외무장관 망명설 등이 나오는데, 전쟁 상대방의 역정보 또는 흑색선전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언론은 그 증거가 뭐고 이를 보도한 현지 언론의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고 독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과거 분쟁과 관련한 언론의 경험은 이런 보도들이 전쟁 당사국의 선전 공작인지, 아니면 그냥 창작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실 평범한 독자 가운데서도 이번 테러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물며 전문가라는 언론이나 국제부 기자들, 그리고 국제정치학자들이 보통사람 수준의 질문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다.
물론, 정부는 미국의 공격을 공식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 언론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비판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정부를 돕는 일이다. 미국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면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는 게 문제다. 국내 문제와 관련해선 음모론이다 뭐다 무수히 제기하고 다양한 논쟁을 벌이는데 국제문제, 특히 미국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학생 정도의 문제의식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보도하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이슬람권접근이 힘들고 아프가니스탄이 폐쇄적이어서 다루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기자가 있는 곳에 기사가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 제3세계에 관해 기사가치가 없는 것처럼 생각할 지 모르나 이런 시각을 바꿔서 실제 파견하면 기사를 찾을 수 있다.
강─국제보도를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독자 보도인데, 외국의 경우 신문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가 ‘누가 국제보도를 많이 하는가’이다. 큰 사건이 터져 외신을 인용할 수밖에 없을 경우, 정말 귄위지가 아니면 무시했으면 한다. 이번에 화제를 모은 알 자지라 방송의 경우 아프가니스탄에 카불 주재 특파원을 수년간 투자하면서 ‘묻어뒀다.’ 언젠가 중앙아시아가 중요한 뉴스원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최근 인터넷에서 이번 테러사건 자체는 아니더라도, 아프가니스탄이 이번 사태와 같이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역사적, 지정학적 요인들을 통해 예견하듯 분석해 놓은 인도 국방연구원의 논문들을 봤다. 이상적인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언론의 투자와 학자들의 깊이 있는 연구가 있다면 휠씬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박─우리 언론을 위해 약간 변명을 한다면, 신문이나 방송의 지적 역량은 넓게 볼 때 그 사회의 집단적 지적역량을 반영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국제분야 역량이 굉장히 취약하다. 또 역사적 경험을 봤을 때 서구 중심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된 게 우리가 제일 늦다. 인도 등 동남아는 17, 8세기 편입됐지만 우리나라는 20세기에 들어서 일본과 미국을 통해 편입됐다. 말레이시아나 인도 사람들의 글과 비교해도 국제 감각이 떨어진다. 이제는 국제역량을 키워야 한다.
강─특파원의 전문성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국제부 기자를 오래하면 별 볼일 없다는 인식이 있다. 우리 언론계 여건에서 국제분야를 전문으로 해선 경력관리에도 별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인 것 같다. 국제보도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전문성 해결은 힘들다.
또 이번 사건처럼 특파원으로 급파될 경우, 현지 언론인들 뿐 아니라 관련 분야의 전문가나 학자들까지 다양하게 만나 취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박─부시는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다’고 말했지만 사우디를 제외한 이슬람권이 지금 술렁거리고 있다. 미국과 느슨한 연대를 맺었지만, 문제가 언제 어디서 터져 나올 지 모른다. 미국의 테러전쟁에 지금은 반대할수는 없지만, 사태 추이를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빈라덴을 죽인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전쟁영화 보듯 중계하고 있다.
강─이번 사태를 마치 선과 악의 대결처럼 보는데, 걸프전 등 국제분쟁을 이념과 종교적 측면에서 추상적으로 봐선 안된다. 국가간 전쟁은 리얼한 현실정치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 언론도 이를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강한 국가는 사실 사우디다. 그런 사우디가 지금 미국하고 제일 친하다. 사우디도 국익을 따질 때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탈레반 원리주의를 악으로 보는 것은 전쟁의 명분이다. 언론이 국제정치를 볼 때는 가장 보편적이고 경험으로 입증된 국제정치학의 틀에서 각 나라의 선택과 움직임을 봐야지, 단순히 선악의 기준으로 봐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