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과 공방은 넘치는데 실체 접근은 미비하다. 최근 정치권의 폭로가 잇따르면서 이같은 문제에 대한 언론의 단순 중계·확대 보도 양상이 도마에 올랐다. 사안의 초기, 봇물 터지듯 쏟아지던 보도가 진상규명에까지 이르지 못한 채 용두사미로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련의 보도양상은 의혹 제기, 검찰 수사 착수→야당 폭로와 대대적 보도→검찰수사, 국감 중계→수사 종결, 보도 급감 식으로 정형화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현안으로 부각됐던 ‘이용호 게이트’의 경우 지난 9월 4일 구속과 함께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국감과 맞물려 한나라당은 ‘권력, 사채, 금고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규정하며 여러 의혹들을 폭로했고 언론도 이를 연일 보도했다.
언론은 사건 초기에 이씨에 대한 서울지검의 불입건 처분 의혹, 김태정 전 법무부장관 1억원 수임, 현직 검찰총장 동생의 이씨 회사 취업 등을 밝혀내기도 했지만 이같은 취재열기가 실체 접근에까지 이르진 못했다. 또 한나라당 폭로를 받아 주요하게 보도한 ‘여권 실세 자금 관리설’, ‘여운환 구속 당시 여권 인사 접견설’ ‘이용호 비망록’, ‘아태재단 자금 유입설’ 등이 대부분 야당 주장에 그친 것으로 판명났다.
기사량에서도, 9월 4일 이용호씨 구속부터 30일까지 10개 종합지 보도건수는 1741건으로 한 신문이 하루 평균 7건 남짓의 기사를 게재했으나 10월 1~19일에는 하루 평균 4건 정도로 줄었다. 19일 한나라당의 여권인사 실명공개 이후에도 하루 평균 3건 정도의 기사를 보도했다. 정치권 폭로와 공방에 기대 특별취재팀 구성 등 자체적인 실체 접근 노력은 미비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16일부터 지면을 달궜던 백궁·정자지구 의혹과 관련해서도 첫주에 한 신문사 당 하루 평균 3~4건의 기사를 보도한 반면 이번주 들어 1건 안팎으로 기사 건수가 줄고 있다. 이미 3년전에 제기됐던 문제였다는 지적에도 불구, 그마나 성남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을 전한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10월부터 불거진 이른바 ‘정현준 게이트’ 때에도 양상은 비슷했다.
지난해 10월 22일 금감원이 정현준 KDL 사장을 불법대출 혐의로 고발하자 야당은 곧바로 ‘정현준 리스트’를 거론하며 금융계-사채업계-벤처업계-정·관계 커넥션 의혹을제기했다.
11월 들어 ‘진승현 게이트’까지 합세하면서 의혹 보도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정현준 사설펀드에 가입한 여권인사 실명을 공개하기도 했으나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의 가입사실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량 역시 10월 21~31일 한 신문 하루 평균 6건에서 11월 2건 안팎, 12월에는 1건도 되지 않았다. 진승현 건도 11월 4~5건에서 12월 1~2건으로 줄었으며 대부분의 언론은 올들어 구형, 선고 내용을 1단 처리했다.
한 정치부 기자는 “뭔가 폭로됐다면 이에 대한 사실 확인이 언론의 우선 책무”라며 “대부분 야당 주장을 중계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각종 의혹 보도에서 언론이 자체적으로 확인한 사실이 얼마나 되는지 짚어볼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