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한겨레 정치부 차장이 최근 펴낸 책 ‘DJ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에서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실시 의도와 배경을 언급한 대목이 논란이 되고 있다.
“현 정권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한 정치적 목적은 ‘언론사 타격’”이라는 내용이 기술돼 파문이 일고 있는 이 책은 지역감정을 부추켜 ‘정권 흔들기’를 시도한 ‘빅3’와 이를 견제하려는 청와대의 팽팽한 기세 싸움 속에 ‘언론사 타격’용으로 세무조사가 진행됐다는 것을 청와대 비서관들의 발언을 통해 폭로하고 있다. 현 정권이 ‘언론과의 결별’을 무릅 쓰고 ‘언론사 타격’을 위해 ‘법률에 정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으로 세무조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문제의 청와대 비서관 발언
총 31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전라도 정권을 우습게 본 ‘빅3’, 언론”이라는 27번째 장이다.
성 기자는 “99년 중앙일보가 세무조사를 ‘당한’ 배경에는 DJ 정권의 ‘손보기’ 의도가 분명히 숨어있다”고 말한다. 실제 98년 11월 청와대 한 수석비서관이 성 기자에게 털어놓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JP와 자민련은 조선-중앙-세계일보로 내각제 보수연합을 획책하고 있다. 우리가 내각제 약속은 지켜야 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이분법적인 대립구도로 가는 내각제는 안된다. 언론이 이럴 수 없다. 중앙과 세계는 당장 작살내겠다. 조선도 두세달 내에 그냥 안둔다. 국세청 상속세로 뒤집어버리겠다.”
앞서 98년 8월 청와대 한 수석비서관도 성 기자에게 “(언론개혁에 대해) 좀 지켜보려고 한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시작하면 사활을 건 전쟁이 된다. 이런 얘기가 나가면 큰일난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4월 총선 이후 동아일보의 정권 공격이 점차 드세지면서 2000년 9월 9일자 “대구·부산엔 추석이 없다”는 보도에 청와대는 경악한다. 또 그해 11월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이 공적자금 추가 투입과 관련해 DJ에게 ‘석고대죄’를 요구한 것과 관련 성 기자는 “DJ와 청와대 사람들은 언론에 대해 차츰 ‘한계’를 느껴갔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빅3’를 한번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갔다”고 밝혔다.
2001년 1월 DJ가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한 이후 청와대의 한 수석은 성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언론사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조선 동아 중앙은 길길이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뭘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성 기자는 이와 관련 “정권이 언론을 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세무조사였다. 국세청이 조사팀을 정비하고 내사에 착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청와대는 세무조사 착수 발표 전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쪽에 세무조사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었다. 하지만 동아일보에는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성 기자는 “세무조사 기획단계부터 깊숙이 개입한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조-중-동이 정권에 쉽게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임을 예상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격렬한 비판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었다는 얘기다. 정확히 말하면 ‘언론 길들이기’가 아니라 ‘언론사 타격’이 정치적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무슨 배짱으로 DJ는 세무조사를 시작했을까? 정답은 정권과 언론의 ‘결별’이다. 언론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현 정권의 한 실력자는 성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정권에 대한 기사를 비판적으로 쓰든 호의적으로 쓰든 신문사 마음대로다. 그 대신 우리는 법률에 정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어차피 몇몇 신문은 이회창씨 집권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더 잃을 것도 없다”
지역감정 증폭에 나선 ‘빅3’
성 기자는 이 책을 통해 “집권 초기 DJ는 언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빅3’는 DJ를 ‘힘없는 정권’이라며 깔봤고 필요이상으로 지역감정을 증폭시켰다. 한나라당이 지역편중 인사를 지적하면 ‘빅3’는 여지없이 큰 기사로 취급했다”고 지적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이나 김영삼 정권에서는 야당의 성명이나 논평을 기사로 제대로 취급한 적이 없던 ‘빅3’가 한나라당과 함께 사실상 정권 흔들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성 기자는 “그 결과 지역갈등,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 ‘반DJ’ 감정이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98년 제2건국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동아일보가 정권 비판에 본격 가세했고 ‘빅3’ 지면에는 ‘호남편중 인사’라는 제목이 끊이질 않았다. 성 기자는 “호남편중 인사 기사는 신문이 적극적으로 취재를 해서 작성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한나라당의 주장을 그대로 실어주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성 기자는 또 2000년 9월 9일자 동아일보 1면의 “대구·부산엔 추석이없다”를 대표적인 지역감정 자극 기사로 소개했다. 성 기자는 “동아일보가 DJ 정권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DJ는 정치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성 기자는 세무조사에 반발하며 지난 6월 27일 조선일보 기자들이 낸 성명에 대해 공정성이 생명인 언론사 기자들이 ‘싸우겠다’고 선언한 것은 공정성과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김대중 주필이 ‘김대중 칼럼’에서 국세청이 자신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며 언론탄압 주장을 편 것에 대해서도 신문 지면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덧붙였다.
DJ 정권과 언론의 관계
성 기자는 “견디다 못한 DJ가 마지막으로 ‘좋다. 법대로 하자’며 세무조사라는 칼을 뽑아들었지만 그전까지 DJ는 세 신문사 사주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고 말한다. 사주에게 문화훈장을 주고 신문사의 하찮은 행사까지 참석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도와달라”고 부탁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빅3’는 “지역문제에 대해 DJ가 잘못한 것도 많지만 필요 이상으로 지역갈등을 증폭시켰고” 마침내 DJ도 언론보도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DJ는 또 집권하면서 없앴던 공보처를 국정홍보처로 부활시키는 등 언론대책에도 적극 나서게 된다.
성 기자는 “마침내 99년 중앙일보와 세계일보에 대해 세무조사라는 ‘칼’을 꺼내 들었고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구속된 이후 DJ와 언론의 긴장관계는 평화로운 시기를 맞는 듯 했으나 ‘빅3’의 언론비판은 전혀 무뎌지지 않았다”며 “이 시기 청와대 내부에서는 DJ의 언론정책에 대한 비판이 활발했고 ‘언론과의 전쟁’을 주장하는 청와대 비서관들도 점차 늘어났다”고 밝혔다. 결국 DJ는 지난 1월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 대책을 언급한 뒤 곧바로 세무조사에 착수했고 세 언론사의 사주들은 구속됐다.
책의 기획의도
성 기자는 이 책의 기획의도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성공하지 못한 배경이 무엇인지 살피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성 기자는 “DJ의 지역갈등 해소는 철저히 실패했다”고 평가하면서 주요 원인으로 ▷호남 편중 인사 ▷언론의 지역감정 증폭 ▷야당의 정략적인 지역감정 부채질 등을 지적했다. 성 기자는 “DJ의 잘못은 호남 출신들 이외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많이 확보하지 못한‘능력부족’ ‘안목부족’, 아랫사람들의 ‘충성심’을 끊임없이 검증하려 든 ‘협량함’이 문제”라면서 “DJ가 지역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그의 책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수준이 아직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탓이 더 크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 책은 지난 8월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의 ‘2001년 하반기 언론인 저술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