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칼럼] 우정과 경쟁

이진명 매일경제 기자  2001.10.27 11:24:42

기사프린트

출입처 기자실에 들어서면 여기가 꼭 그곳 같다는 생각을 한다. JSA(공동경비구역).

영화 ‘공동경비구역’에는 북한군 병사가 지뢰를 밟은 남한군 병사를 구해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평범한 수준 이상의 우정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어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각 언론사 기자들이 한 공간에 모인 기자실 분위기도 이와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는 언론사 입사시기가 비슷한 타사기자들과 함께 밤이 늦도록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결혼을 하거나 승진을 하는 좋은 소식이 있으면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한다. 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위로와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어쩌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동료로서 당연한 공동체의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평소에는 서로간에 미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특히 신문이 배달되는 시간에는 더욱 그렇다. 독자에게는 신문이 단순한 소식지에 불과하지만 기자들에게는 하루하루의 업적을 평가한 성적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순간 만큼은 타사 기자들이 강력한 경쟁자로 여겨진다.

기자실은 바로 이같은 경쟁의식과 동료의식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곳이다. 몇몇 타사 기자에 대해서는 실제 지뢰를 밟았을 때도 도와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각별한 사이지만 일하는 시간 만큼은 여전히 자신만의 특종을 위해 긴장과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 기자생활을 시작한 후 지금껏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이 바로 하루에도 몇번씩 교차하는 우정과 경쟁 사이의 갈등이었다. 그리고 그 갈등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하지만 이같은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독자를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부터다. 결국 기자의 존재가치는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해 성립하기 때문이다. 공동경비구역 내 남북한 군사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총구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취재경쟁이 독자를 위한 것이었다면 ‘선의의 경쟁’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무모한 겨루기’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기자가 해야할 몫이 ‘독자의 만족’이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다시 우정과 경쟁의 갈등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기자에 대한 평가는 기자들 서로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 곧 독자가 내린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