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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 이라크… 이번엔 미국 내부?

탄저균 배후 보도 '오락가락'

김동원 기자  2001.11.03 11: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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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빈 라덴이라고 중계하더니 이젠 미국 내부소행?

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탄저균 위협 사태의 배후 문제를 보도해 온 국내 언론의 태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빈 라덴을 사실상의 배후로 단정하듯 보도해 온 언론이 지난달 29일부터는 돌연 미국 내부의 극렬주의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대부분 언론은 10월 29일자 국제 또는 종합면에 ‘미, 탄저수사 ‘국내제조’에 초점’, ‘“탄저테러 미국 내부소행 유력”’ 등의 제목으로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등 수사당국은 탄저균 테러의 배후가 미국내의 극렬분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라는 10월 27일자 워싱턴포스트지를 인용, 보도했다.

하지만 바로 며칠전까지만 해도 국내 언론은 미국 고위관료의 발언을 근거로 한 미국 언론의 보도를 아무런 검증 없이 받아쓰면서 탄저균 사태의 배후를 사실상 빈 라덴으로 지목하는 태도를 취했다. 일부 언론들은 심지어 국내에 출간된 요세프 보단스키의 빈 라덴 전기를 인용, 탄저균 샘플을 북한에서 사들였다는 주장을 기사화해 독자들에게 미국 내 탄저균 사태에 북한이 연관돼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심어주기까지 했다. 또 일부는 이라크를 이번 탄저균 사태의 배후로 지목하는 외신보도 내용을 검증 없이 보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빈라덴 → 이라크 → 미국 내부’로 바뀌어 온 국내 언론의 탄저균 사태 배후 관련 보도는 외신, 주로는 전쟁 당사국인 미국의 언론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데 따른 결과이다. 처음 빈 라덴을 지목한 미국 고위관료의 발언도 미국 언론을 인용한 것이고 이번 미국 내 극렬주의자들의 소행 가능성 역시 미국 언론을 뒤따른 것이다.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이고 수사도 미국 당국이 주관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이처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보도태도는 독자들에게 혼란만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국내 언론의 보도태도와 관련해 한국일보는 지난달 29일자 사설에서 “탄저균 위협 사태를 과장, 왜곡한 미국쪽 보도와 주장을 분별없이 뒤따른 잘못이 크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또 “뚜렷한 근거 없이 빈 라덴의 소행으로 모는 주장만 골라 과잉보도,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 이바지했다”며 “탄저균 위협 사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국 내 불순 세력 소행이란 합리적 추리가 일찍부터 있었지만, 우리 언론은북한과 이라크를 출처로 의심하는 보도에만 매달렸다”고 꼬집었다.

한 신문사 국제부 기자는 “빈 라덴이나 이라크의 소행임을 밝힐 뚜렷한 물증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던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