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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광주매일 폐업 그 후

'제대로 된 신문' 만들자는데 폐업이라니…

박주선 기자  2001.11.03 11: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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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파업하던 날 폐업 결심”



광주매일, 금광기업(건설), 송원학원, 현대백화점, 지리산송원리조트, 광주이동통신 등 1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규모 수 조원의 송원그룹. 대부분의 계열사가 흑자를 내는 탄탄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금광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계열사 중 유일하게 적자를 내는 곳이 광주매일이다. 하지만 모기업의 안정적인 재무구조로 광주매일은 91년 창간당시부터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고, 자금 사정이 좋은 언론사로 손꼽혀왔다. 10여개 신문사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 광주에서 최후까지 남아있을 신문사라는 말이 오고갈 정도였다. 광주매일 폐업신고에 대해 지역 언론계 안팎에서 의아해했던 것도 그래서다.

예상치 못했던 폐업에 대해 회사측은 노조파업이 주요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고경주 사장은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던 날(9월 19일) 밤에 폐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광주일보, 전남일보보다 더 많은 월급을 주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자 희망을 잃었다는 게 고 사장의 설명이다. 올해 3월 2일 노조가 상여금 체불로 자신을 광주지방노동청에 고발했던 것 역시 배신감을 들게 했다고 고 사장은 재차 강조했다. 창간 이후 계속된 적자 부담도 컸다. 고 사장은 “창간 때부터 모기업에서 매년 많게는 25억원 가량 지원을 받아왔지만 적자에 허덕여왔다”며 “시장 논리상 적자 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IMF때 삭감한 임금 아직 회복 안돼



노조의 입장은 다르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삭감된 임금이 5년이 다 되도록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한 기자는 선배기자 얘기를 꺼내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영세민 자녀’로 원비 감면대상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군요”라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광주에서는 월급을 많이 받는다는 광주매일의 10년차 기자 연봉이 20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라고 한다.

올 임금 협상에서도 사측 태도는 무성의했다고 항변한다. 노조는 당초 협상안을 수정해 기본급 3.7% 인상안을 내놓았지만 사측은 상여금 400% 삭감, 기본급 5% 인상안을 고수했다. 고 사장이 ‘배신’이라고 말하는 고발건도 노조로서는 수 차례 상여금 지급 약속을 미루었던 사장에 대한 최후의 대응 방법이었다고 한다.

노사 입장이 평행선을 긋는 사이 광주매일은 노조파업, 회사측의 직장폐쇄에 이어 폐업 신고에 이르렀다. 이같은 과정에 대해 지역에서는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성재 조선대 신방과 교수는 광주지역 인터넷신문에 “노조가 ‘언론개혁의 첫 걸음’으로 인간다운 처우를 기대했으나 사주는 적자경영 상황에서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명분으로 결국 폐업신고를 했다”며 “여기엔 자본가는 직장폐쇄권, 폐업권 등 혜택을 누리지만 사원들은 어디에도 호소할 곳이 없는 한국식 자본주의의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매일 출신의 한 기자는 “노조 파업이 결국 폐업으로 끝나게 되면 앞으로 언론사주의 전횡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기자들 운신의 폭은 극도로 좁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언론노조, 민주노총광주전남본부 등은 성명을 내고 사측이 신문사를 사적으로 이용하다 효용이 다해 용도폐기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신문 만들겠다”



사원들에게 폐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광주매일 노조는 폐업신고 이후 새로운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통해 새로운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 싸움의 목표다. 정한진 노조위원장은 “단순히 폐업 철회가 목표가 아니다”라며 “폐업 철회가 목표였다면 사장이 제시한 대로 전원 사표를 제출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 신문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원그룹의 바람막이로 지내온 지난 10년을 반성하고 내부개혁을 통해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한 기자는 “임금 문제는 파업의 계기였을 뿐 이번 싸움은 10년간 억압돼온 내부 개혁의 요구가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만있어도 광주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을 것 아니겠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떳떳해지기 위해 힘든 투쟁을 한다”며 “승리를 장담할 수 없지만 내부 개혁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고 말했다.

내부 개혁 의지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불어닥친 감원 바람에 87명이 정리해고 된 뒤 기자들은 위축됐다. 노조도 무력해졌다. 기자들의 무관심과 냉소는 올초 노조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극에 달했다. 반면 사주의 전횡은 극심해졌고 울분은 술자리에서만 간간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건설회사 관련 제보가 들어와서 취재를 하려고 하는데 도청직원이 회사에 전화한번 하면 기사 못 나갈 텐데 왜 취재를 하느냐는 말을 했다”는 한 기자는 “너무나 수치스러웠는데 역시 데스크는 기사 출고를 하지 않더라”는 얘기를 하며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독립언론 쟁취를 향한 기자들의 처절한 투쟁은 시작됐지만 지역 여론은 아직 냉담하다. 임동욱 광주전남민주언론운동연합 의장은 “두 가지 문제를 다 봐야 한다”며 “사주가 신문사를 모기업의 방패막이로 활용하다 용도폐기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지금까지 광주매일 기자들이 언론개혁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지역 한 신문사의 한 기자는 “척박한 지방지 시장에서 모기업 지원없이 광고와 판매수입으로 생존을 해야하는 독립언론 구현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하며 “또다른 자본의 종속을 받는 신문이 생기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광주매일 기자들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한 기자는 “11개 신문사가 난립해 있는 광주에 한 신문사라도 없어지는 게 언론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폐업을 하니까 직장을 잃기 싫어 싸우기 시작했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안다”며 “하지만 이제나마 언론개혁을 위해 나섰는데 그 싹을 잘라 버리면 앞으로 기자들이 개혁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호소했다.





독립언론 위한 힘겨운 싸움 시작



광주매일을 바라보는 엇갈리는 시선 속에서 노조는 할 말을 할 수 있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우선 사주를 상대로 부채 청산과 윤전기, 전산시스템 등의 무상양도를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시민단체, 학계, 노동계 등 지역 여론을 수렴할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경영정상화 연구팀을 꾸려 독립언론 건설 이후 ‘자립경영’의 방안도 마련할 것이다.

어느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조합원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던 조합원들은 싸움에서 지더라도 싸웠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고, 힘들더라도 IMF 이후 처음으로 모두 하나가 된 모습에서 희망을 찾는다고 했다. 11월 1일 창사 10주년 기념일에 화려한 기념식 대신 거리 선전전에 나섰지만 지난 10년간보다 최근 한 달간이 더 소중하다는 한 기자의 얘기처럼 광주매일 기자들은 이제라도 부끄럽게 살지 않기 위해 일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