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 초강국을 자랑하던 미국을 뒤흔든 9·11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애국주의와 내셔널리즘에 기반을 둔 보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 기자의 윤리의식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 미국의 한 지역 방송국에서 발생했다.
미국 중서부 미주리주에 위치한 KOMU-8 채널은 미국에서 대학이 소유한 유일한 상업방송국이다. 데스크급 10여명 정도만 상근이며, 취재 및 보도는 미주리대학 저널리즘 전공 학생과 대학원생들이 맡고 있다. 15만 가구 이상이 시청하는 이 지역방송국에서 발생한 사건이 미국 전 언론에 보도되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KOMU-8 Stacey Woelfel 보도국장은 9월 17일 모든 스탭들에게 “취재와 방송시 왼편 가슴에 달고 있는 리본 패용을 금지한다”는 메일을 보냈다(지금 미국 국민들은 9·11 사건 이후 애도 및 단결심을 상징하는 표시로 리본-red, blue, white가 섞여있는 8자 모양의 상징물-을 달고 있다). 그는 메일에서 “저널리스트는 뉴스보도시 외부영향을 받을 수 있는 어떤 것도 배제해야 하며, 보도의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기자의 언론윤리는 보다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자들의 리본 패용은 자칫 공정성을 잃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주 의원들이 항의했다. 언론인도 미국 국민인 만큼 리본 패용을 금지하는 것은 국민정서와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의원들은 이 결정이 철회되지 않으면 대학 지원금을 삭감하겠다고 위협했다(미주리대학은 주립이기 때문에 운영자금의 상당부분을 주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저널리즘 대학 교수 50여명은 몇차례의 격론을 거쳐 10월 2일 Woelfel 국장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공개 성명서를 발표했다. 교수들은 성명에서 “모든 사건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만이 저널리스트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Len Bruzzese 교수는 “이번 사건이 기자윤리 및 뉴스가치, 그리고 보도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KOMU-8 방송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ABC 뉴스 David Wstin 회장과 NBC 뉴스 Neal Shapiro 회장은 기자들에게 리본과 성조기 상징물 패용을 금지했다. FOX 뉴스는 일부 기자들만 리본 및 성조기를 패용하고 보도하고 있다. 일부 지역 방송국들은 기자 개인에게 맡긴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신문 역시 논쟁에서 비켜가고 있지 않다. New York Times는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기자 개인이 결정할 윤리적인 문제에 보도국장이 너무 지나친 개입을 했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Seattle Times는 KOMU-8 결정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며 주의원들의 행동은 언론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해치는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9·11 사건이 터진 후 한국 언론의 지나친 미국중심 시각, 사태의 핵심을 간과하는 지엽적이고 선정적인 보도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KOMU-8 사건은 미국 언론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저널리스트의 보도행위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가?”라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언론재단 기본연수에서 리영희 선생이 수습기자들에게 던진 화두-“저널리스트들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추구해야 할 단 한가지, 그것은 바로 진실에 대한 충성이다”-에서 해답의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