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에서 방송 관련 기사를 1년 가까이 써오면서 시청률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나 사연들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예컨대 ‘컬러 바만 나와도 그 정도는 하겠다’란 말은, 같은 시간대에 경쟁하는 두 프로그램 중 한 쪽의 시청률이 심하게 떨어질 때, 취약한 프로그램을 비꼬는 말이다. 또 드라마의 시청률이 떨어질 때 갑자기 ‘숨겨 놓은 자식’이 등장한다거나, 외국서 살던 시누이가 들어와 고부 갈등을 일으킨다는 얘기를 듣고 웃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안간힘을 써도 한번 떨어진 시청률이 오르는 법은 없기 때문에 결국엔 ‘조기 종영이 최고’, ‘시청률 떨어지면 그저 혀 깨물고 죽는 게 상책’, ‘웬만해선 시청률 하락을 막을 수 없다’란 말이 방송가의 금언처럼 떠돈다는 얘기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1년간의 방송 담당기자 생활 동안, 가장 흥미로웠던 말은 MBC 한 편성팀 간부의 입에서 나온 “공익성과 오락성의 절묘한 결합”이다. 몇주 전, 프로그램 가을 개편 때 새로운 편성 내용을 설명하면서 이 간부는 “MBC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인 공익성과 오락성의 절묘한 결합을 시도했다”고 말했고, 잘 나가는 개그맨 5명이 공동 진행하는 쇼를 ‘공익 버라이어티’라 소개하며 그 전형으로 떠올렸다.
‘공익 버라이어티’란 검증되지 않은 신조어를 그저 부정하고 내칠 필요도, 또 국외자로서 오락과 공익의 절묘한 결합에 웃음을 날릴 이유도 없다. 오만하고 섣부른 짓이다. 그러나 개편 설명회가 끝나고 나온 신문 기사의 상당수가 ‘오락에 절묘하게 접목시킨 공익성’은 무시한 채 MBC 개편의 공영성 후퇴를 얘기했다. 그같은 후퇴가 올들어 겪은 채널 시청률 저하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나는 뒤늦게, 설명회 며칠 전에 만난 MBC 한 부장급 PD의 말을 떠올렸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 그는 MBC가 처한 딜레마를 ‘민영과 공영 사이의 방황’으로 풀이했고, 이제쯤 확실히 ‘민영’ 쪽으로 가야 할 전략을 짜야 할 시기가 온 것 아니냐는 말을 보태기도 했다.
확실히 오락과 공익의 절묘한 결합이 적어도 지금까지 MBC를 이끌고 온 큰 장점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부장급 PD의 말대로 ‘민영’과 ‘공영’ 사이에서 MBC가 어정쩡한 입장인 것이 사실이라면, ‘오락과 공익의 절묘한 결합’은 그야말로 MBC의 현 상황을 드러내는 절묘한 문장 구사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절묘함을 떠올리자니 그저 흥미로운 일만은 또 아니란 생각도 함께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