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거야(巨野) 정국’ 속에서 언론의 역할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 공조, 김대중 대통령 당 총재직 사퇴 등 일련의 국면 변화가 정권에 대한 감시와 견제만큼이나 야당에 대한 견제 필요성을 언론에 제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야권이 건강보험 재정 분리, 남북관계법 개정 등 쟁점 법안 통과 방침을 세운 상황에서 교원정년 연장안 표결 강행을 전후로 언론도 비판 수위를 높여 주목된다.
정치부의 한 기자는 ‘집권야당’이라는 표현을 빌어 “정치권 역학관계의 변화 속에서 언론의 기존 ‘야당 보도’ 태도 역시 재고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한 신문사 정치부 차장은 “한나라당의 정책 추진 양상이 기사판단의 주요 잣대가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쟁점이 되는 개정안들의 경우 보다 비판적이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교원정년 연장안 통과 이전에도 사설을 통해 쟁점 법안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기사의 경우 법안에 대한 분석과 파장보다는 중계나 나열식 보도가 적잖았다. 교원정년 연장안 통과 이전 사설에서 쟁점 법안의 신중 처리나 반대입장을 밝힌 언론사는 경향신문, 대한매일, 세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등이었다. 반면 기사에서는 ‘쟁점법안 거야 우리 뜻대로 처리’, ‘여야 법안 갈등 고조’, ‘교육정년 연장 논란 확산’ 등 쟁점 정리, 중계식 보도 양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야권의 법안 강행 처리에 대한 우려와 법안 통과에 따른 파장을 다룬 기사 수위가 높아진 것은 교육정년 연장안 통과 이후였다. 21일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연장안을 강행 처리하자 ‘거야 힘자랑할 때 아니다’(경향), ‘거야의 무책임한 횡포’(중앙), ‘거야국회와 교원정년 연장’ 등 8개 신문은 일제히 사설을 통해 이를 비판했다. 이전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한겨레를 제외하면 10개 일간지 가운데 관련 사설을 게재하지 않은 신문은 조선일보뿐이었다.
한 교육부 출입기자는 “연장안 처리 파장이 이렇게 불거질지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야권의 쟁점 법안이 산적한 만큼 앞으로 ‘뒷북치기’ 보도는 제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신문사 논설위원은 “지금의 거야정국은 ‘한-자동맹’과 언론의 반정부 정서가 합세하면서 더 크게 부각된 면이 있다”며 “몇몇 법안의 경우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측면이다분한 만큼 보다 면밀한 분석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김영호 전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현 정권이 그동안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추진한 정책들이 문제점을 노출, 국정혼란을 야기한 측면도 있다”고 전제하며 “그렇다고 교원정년 연장처럼 정책을 다시 원점으로 돌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 전 국장은 “한나라당도 원내 제1당의 책임이 있는 만큼 언론의 견제 기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