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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95년 '장길산'제작 안기부 압력으로 중단

"윤세영회장 안기부 불려가 보류 결정"

서정은 기자  2001.1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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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지난 95년 드라마 ‘장길산’을 제작하려 했으나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압력으로 중단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안기부 오정소 국내담당 차장이 SBS 윤세영 회장과 SBS 프로덕션 신영균 회장을 직접 남산 안기부 청사로 불러들여 제작 중단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장길산’의 저자인 황석영씨가 지난 94년 SBS 프로덕션과 맺은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이 5년을 경과했다며 계약 말소를 요구했으나 SBS측이 응하지 않자 지난 5월 SBS 프로덕션을 상대로 드라마판권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밝혀졌다.

SBS측은 “계약서에 ‘영상물 제작에 따른 사회여건으로 제작이 불가능할 경우 5년간 자동 연장된다’는 단서조항이 있다”며 제작을 할 수 없었던 사회여건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 안기부의 제작 중단 압력을 증거 자료로 제시했다.

현재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신영균 SBS 프로덕션 회장은 진술서에서 “장길산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이 체결된지 1년이 지난 96년 6월경 안기부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본인은 윤세영 회장과 함께 안기부 남산청사에 도착해 응접실로 안내받았고 당시 안기부 국내담당인 오정소 차장을 면담했다”며 “오 차장은 ‘장길산의 저자인 황석영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중인데 이런 여건에서 장길산이 영상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작가의 출소 시점 이후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이어 “안기부 차장이 장길산의 영상화를 미뤄달라고 요청해 본인과 윤 회장은 드라마 작업을 보류할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작가 황석영씨 측은 “소설 ‘장길산’이 이적표현물로 논란이 된 적이 없는 상황에서 드라마 제작엔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며 “SBS가 정부의 간섭으로 드라마 제작에 착수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방송사의 귀책사유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언론계에서는 방송 제작에 대한 안기부의 부당한 압력을 문제삼는 한편 이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 방송사의 태도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SBS 보도국 한 간부는 “95년 당시는 SBS가 출범한지 몇 년 안됐고 당시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안기부의 압력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면서도 “문민정부 시대에 방송사 회장이 안기부로 직접 불려가 제작 중단 압력을 받았다는 것은 굴욕적인 일”이라고말했다.

언론계 한 인사는 “방송법상 누구든 방송편성에 관해 규제나 간섭을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는 만큼 안기부의 처사는 당연히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전제한 뒤 “이해집단들이 프로그램을 문제삼아 소송을 내거나 집단 행동에 나설 땐 언론자유 침해 운운하면서 정작 국가권력의 부당한 간섭에는 침묵한다면 어떻게 방송의 독립과 자유를 지킬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