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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전담 재판부 '바빠졌다'

올해 소송 지난해 2배, 재판부 추가신설 검토

서정은 기자  2001.11.23 2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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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올해 11월 15일까지 서울지방법원에 접수된 언론보도 관련 소송 115건, 판결선고 41건, 조정·화해·취하 처리 24건, 미제사건 80건….

최근 언론관련 소송이 급증하면서 서울지방법원 언론전담재판부인 민사합의 25부(부장판사 안영률)도 정신없이 바빠졌다. 늘어난 업무량도 그렇지만 언론의 공적 기능과 개인의 권익침해라는 두 부분을 끊임없이 저울질해야 하는 재판의 성격상 심적 부담 역시 상당하다.

지난 96년 3월부터 언론전담재판부로 활동을 시작한 민사합의 25부는 현재 안영률 부장판사를 포함한 4명의 판사가 언론보도와 관련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및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전담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언론 관련 소송이 급증하면서 업무량이 크게 늘었고 당연히 소송처리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지난해 민사합의 25부에 접수된 사건이 40건인데 비해 올해는 11월 15일 현재 75건이 접수돼 두배 가까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판결선고가 난 사건은 41건이고 조정, 화해, 취하 등으로 처리된 사건은 24건, 재판부가 강제조정을 한 뒤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사건은 9건이다. 이 9건을 포함해 재판부가 앞으로 처리해야 할 사건은 무려 80건. 따라서 서울지법은 언론전담재판부를 추가로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민사합의 25부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내린 판결 선고 41건을 살펴보면 언론사의 승소율이 조금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판결선고가 난 22건 가운데 20건이 원고 일부 승소, 2건이 원고 패소였으나 올해엔 판결선고 19건 가운데 10건이 원고 일부 승소, 9건이 원고 패소로 나타났다. 언론사 승소 건수가 지난해 2건에서 올해 9건으로 다소 늘어난 셈이다.

이에 대해 안 부장판사는 “올해 언론사 승소가 늘어난 것을 보면 그동안 기자들이 한단계 도약했음을 알 수 있다”며 “인권의식보다 기사 작성에만 더 초점을 맞추던 것에서 기본권을 고려하는 기사를 쓰고 있음이 증명된 것”이라고 말한다. 몇 년전만 해도 언론은 각종 의혹사건 보도에서 무조건 실명을 밝혔으나 최근 들어 공적인 인물을 제외하고는 실명보도를 자제하는 등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관련 소송이 급증하는 원인에 대해 언론전담 재판부는 기본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강화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언론사간 소송, 정부기관 등이 제기하는 소송도 많지만 개인이 제기하는 소송역시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언론사간 소송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재판부는 “언론개혁에 대한 입장과 시각이 언론사마다 다르기 때문에 상대 언론사를 비판한 기사와 관련 소송이 많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밖에도 각종 ‘게이트’ ‘리스트’ 등 의혹사건이 많아지면서 검사, 정치인 등 힘있는 권력집단 및 개인 제기하는 소송도 급증하는 추세다.

민사합의 25부가 판결을 내리면서 언론사의 책임을 묻는 요건은 세가지다. 우선 보도의 내용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냐, 즉 공익성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언론보도 사건에서는 공익성이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팩트가 진실한가, 진실이 아니더라도 진실하다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냐 하는 점이 핵심적인 판결 포인트로 작용하게 된다. 언론사가 공익성과 팩트의 진실성을 갖췄다면 손배해상의 책임을 면한다. 공공성과 함께 상당성을 갖출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언론관련 소송에서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느냐’를 가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또 크게 다투어지는 부분이다. 안 부장판사는 “취재한 내용과 작성된 기사 사이에 간극이 크면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결국 기자가 얼마나 성실하게 취재를 했느냐로 판가름 난다”고 말한다.

언론보도는 사실 전달뿐만 아니라 해설과 논평이 가미되기 때문에 그 논평이 공정했는가의 여부가 소송 대상이 되기도 한다. 판단이 쉽지 않고 그래서 그만큼 고민도 크다. 민사합의 25부 판사 4명은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우리가 기자라면 어떻게 기사를 썼을까, 더 이상 취재가 불가능했을까, 추가 취재를 더 해야할까 등등 기자의 입장에서 기사를 되짚어보는 방법으로 신중하게 판결을 내린다”고 강조한다.

최근 언론소송을 다루면서 재판부가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은 바로 언론사의 지나친 속보경쟁에서 비롯한 무리한 추측보도다. 안 부장판사는 “기자들이 너무 치열하다보니 앞서 나가려는 경쟁과 의욕 때문에 무리하게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확인이 충분하지 않아도 일단 기사부터 내고 보자는 식”이라며 “정보를 제공하고 여론을 이끄는 기자들이 사실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불성실한 기사를 쓰면 소송에서 이길 수 없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