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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는 소송 기자들은 괴롭다

"차라리 몸으로 때우게 해달라"

서정은 기자  2001.11.23 2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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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고 돈 있는 ‘억울한 분’들게 엎드려 부탁드린다. 차라리 옛날처럼 데려다 패달라고. 몸으로 때우던 시절이 그립다”

시사저널 서명숙 편집장은 11월 15일자 시사저널 ‘편집장의 편지’에서 ‘소송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는 심정을 이렇듯 절박하게 토로했다. “소송을 거는 축은 대개는 힘 있고 돈 많고 ‘백’있는 유력 기관이나 재벌 기업, 유력 인사들이다. 돈으로든, 시간으로든, 인력으로든 해당 언론사를 크게 골탕먹이겠다는 것이다. 기자 개인은 고통스럽다. 소송 자료를 준비하느라 다른 취재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을 뿐더러 요즘에는 기자에게 소송액 일부를 부담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명예를 보호해야 할 의무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공익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기자들은 특히 이처럼 정부와 권력기관들이 제기하는 소송이 잇따르면서 상당히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한 신문사 사회부 기자는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언론이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은 백번 옳은 일이지만 힘있는 권력기관들이 자기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지 못하게 하려고 소송을 남발하는 경우도 있어 언론 자유의 위축이 우려된다”며 “걸핏하면 소송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정부부처, 군당국, 정당 등 권력기관들은 자신의 태도가 옳은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일보도 지난 16일 사보에서 “정부와 권력기관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고 공격하기 위해 언론중재 및 소송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며 “정부기관이나 검찰 등 공공기관의 반론권 행사에 대해서는 그 요건을 강화하는 등 현행 언론중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소송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자들은 한결같이 우리 언론의 지나친 속보 경쟁과 데스킹·편집 과정에 현장 기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취재 시스템을 지적한다. 기자 개개인이 사실확인을 정확히 하고 양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싣는 등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속보경쟁과 선정주의라는 내부적인 취재시스템과 풍토 개선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한 신문사 정치부 기자는 “데스킹 과정에서 더 강한 ‘팩트’가 요구되고 부풀려지고 선정적인 제목이 달리면서 현장 기자의 의견은 무시될 때가 많다”며 “데스크들도 소송을 많이 의식하고는 있으나 속보 경쟁이 붙으면 다른 언론사에물먹지 않기 위해 무리수를 둘 때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기자들은 소송에 대비한 회사측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일보 노조는 21일 ‘공정보도’ 소식지를 통해 “현재 본사의 취재 관련 소송이 6건이나 진행되고 있어 사내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며 “기사 출고전 변호사 자문 등 사전점검 강화, 소송 전담팀 구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