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조직의 대표가 바뀌는 단순한 요식 행위가 아니다. 조직의 미래와 비전을 설계하는 것이며, 그것을 올바르게 이끌어갈 중심과 주체를 세우는 일이다. 그것은 당연하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모색을 전제로 한다. 현실의 모습에 대한 고뇌와 반성,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한 합의와 토론의 과정이기도 하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38대 기자협회장 선거에 대한 바람은 이것이다. 37의 숫자에 하나가 더해져 38로 바뀌는 ‘산술’의 문제가 아니라 침체된 한국 기자사회에 혁신과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질적 도약’의 계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 설화 중에 구리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싫어 부리로 쪼아대다 피를 토하고 죽은 앵무새의 슬픈 얘기가 있다. 지금 우리가 그러해야 하지 않은가.
누가 더 많은 표를 얻는가는 선거를 보는 최대의 즐거움이다. 짜릿한 역전의 환희가 있고 패배의 좌절과 고통도 있다. 어떤 스포츠 경기보다 드라마틱한게 선거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관전의 즐거움에 빠져 있기에는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 너무 무겁고 엄중하기 때문이다. 기자사회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리는 기자인가 사원인가”라는 비탄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언론개혁의 격랑 속에서 정작 당사자인 기자들은 철저하게 소외되거나 침묵하는 방관자로 흩어져 있다. 언론에 대한 신뢰 지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추락하고 있다. 지역언론의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하루아침에 기자들이 거리로 내몰린 광주매일의 폐업 사태는 지역언론이 당면하고 있는 생존의 위기가 단순하지 않음을 웅변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38대 기자협회장 선거는 ‘보는 선거’가 아니라 ‘참여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 흩어져 있는 ‘힘없는 개인’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스스로를 개혁의 중심과 주체로 세우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언론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기자협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토론의 광장’이 돼야 한다. 출마한 두 후보가 그 중심에 서고, 선거와 관련한 유세나 간담회 등에서 기자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물음과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신성한 한 표로 행사되어져야 한다.
기자협회 38대 집행부가 앞으로 활동하게 될 2년은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있는 ‘정권 교체기’이다. 이 중대한전환의 시기에 언론이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외부의 압력과 언론사 내부의 ‘비뚤어진 욕심’에 대해 기자사회가 단합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주춧돌을 놓는 것이 이번 선거이다.
또한 기자들의 선거답게 모범적으로 치러져야 한다. 각종 연고와 금권에 좌우되는 정치권의 ‘난장판’ 선거가 아니라 그것을 비판해 온 기자들답게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자협회는 지난 37대부터 선거운동 기간 중 식사는 물론 일체의 향응을 제공할 수 없도록 하고, 후보자의 선거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는 ‘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 취지가 올바르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후보자, 회원 모두가 노력하고 절제할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