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겨레신문사에서 15년째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특정 언론사 기자로 일한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기자’는 특정 언론사에 소속돼 자사 이익에만 봉사하는 사람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저는 한국기자협회 한겨레신문지회 초대 지회장을 지내고, 현재 기자협회보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동료, 선후배들에게 항상 이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지금 기자사회는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자사이기주의’와 극도의 상업주의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자사회의 연대감은 날로 엷어지고, 기자의 자존심은 더 이상 입에 꺼내기조차 민망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제가 이번 제38대 한국기자협회 회장선거에 감히 나선 것은 기자들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고, 우리 대한민국 기자 모두가 하나로 뭉쳐 일할 맛 나는 기자사회를 가꿔보기 위해서입니다.
돌이켜보면 기자협회는 1964년 언론자유를 기치로 태동한 이래 언론민주화와 기자 자정운동 등 훌륭한 전통을 만들어왔습니다. 기자협회의 이런 자랑스런 점들은 급격한 언론 환경변화로 인해 자유와 낭만의 상실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자사회의 삭막하고 일그러진 현실은 우리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시대적 과제이자 소명입니다.
동료 기자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올곧은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끈끈한 연대와 화합을 이끌어갈 비전과 추진력을 갖춘 리더십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는 이런 중대한 시점에 기자협회장에 출마하면서, 그동안 선후배 동료들과 오랜 시간 토론과 고민의 자리를 가진 결과 다음과 같은 일을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첫째, ‘함께하는 기자협회’를 만들겠습니다. 언론사간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고, 기자정신을 침해하는 소송, 신체적 위협등 외부 압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사안별 특별팀을 구성하겠습니다.
둘째, 기자사회의 권익옹호에 앞장서겠습니다. 기협 기금을 대폭 확충해 재교육과 국내외 연수 등 회원 개개인의 복리증진과 사기진작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겠습니다.
셋째, 지방과 서울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겠습니다. 우선 지방언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 등을 추진할 ‘지방언론 생존권 보장 특별대책위’를 구성하겠습니다. 지방언론인 실직센터를 개설하고 지방기자 해외연수 기회를 대폭 확대하겠습니다.
넷째, 힘있는 기자협회를 만들겠습니다. 이를 위해 언론평의회 등을 구성해 정부, 정치권, 언론사주 및 간부, 광고주들과 당당하고 선명한 관계를 정립하겠습니다.
다섯째, 공정한 선거문화와 지역감정 해소에 적극 앞장서겠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선거 기간 중 후보초청 토론회를 주관하고 선거보도 준칙을 만들겠습니다. 또 지역별 지방자치단체장 후보 초청토론회 개최를 적극 추진·지원하겠습니다.
여섯째, 남북한 언론교류를 반드시 실현시키겠습니다. 이를 위해 현 집행부의 노력을 이어 남북기자가 통일의 주춧돌이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교류의 장을 만들겠습니다.
일곱째, 즐겁고 보람있게 일하는 기자동네를 만들겠습니다. ‘안식월제’를 도입하고 기자 재교육과 문화생활을 지원할 외부강사 ‘풀단’을 운영하겠습니다. 퇴직하는 기자들에 대한 지원사업도 지금 시작할 때입니다.
동료 기자 여러분!
저는 어느 시인의 말을 참 좋아합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고, 아이들이 따르는 어른이 되고, 솔직한 비판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치르는 보도경쟁 속에서 ‘왜 기자가 됐는지, 어디쯤 서 있는지?’ 방향감각을 잃고 방황한 적이 있는 기자 동료들이라면, 제가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이유를 절절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를 기자협회 회장으로 선택해주신다면, 전국 111개 지회가 따뜻하고 보람 있는 일터로 거듭나는 데 신명을 바쳐 돕겠습니다.
선후배 기자 여러분!
우리 모두 ‘대한민국 기자’로 어깨를 겯고 한국기자협회의 새로운 길을 활짝 열어갑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