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선배는 후배 기자들에게 특정 언론사 기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기자가 되라”고 말한다.
지난해 말 회사 후배가 교도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을 단독 취재한 일이 있었다. 이 선배는 그 후배에게 이 기사를 기자실에 ‘풀’할 것을 권유했다. 특종 욕심 보다 억울한 사연을 널리 알리는 게 기자의 참된 의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이처럼 후배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배다. 나는 1991년 말 사건기자 시절 강남경찰서에서 이 선배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세상물정 모르는 후배 기자를 자상하게 대해줬다. 회사 선배로부터 ‘깨진’ 심신을 다른 회사 선배인 그가 따뜻하게 달래주곤 했다. 그 후 이 선배는 10년 동안 한결같이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해 가을, 군산 매매춘업소 화재 당시 그는 후배 기자 2명을 바로 현장에 보내 어린 여성들의 인권유린 실태를 낱낱히 폭로하도록 했다. 후배들은 이 보도로 ‘엠네스티 인권언론상’을 수상했고, 이 선배는 시상식 한켠에서 따뜻한 미소로 그들을 격려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담보다 실패담을 더 많이 전해주면서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도와준다. 그와 소줏잔을 기울일 때면 자사 이기주의와 특종의식에 매달리지 말고 수습기자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의 취재원과 만나면 인간 이상기를 엿볼 수 있다. 수습기자 시절에 만난 말단 경찰관과 지금도 소주를 기울일 정도로 친화력이 있다. 게다가 비판기사를 쓰고 난 뒤 오히려 상대방과 더 친해지는 매력도 가지고 있다.
그의 기자로서의 직업적 자부심은 남다르다. 96년 당시 통일부 장관이 기자실에 들러 “기업은 2류, 정치는 3류”라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발언에 빗대 “기자는 4류”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분노했다. 이 때 당시 기자단 간사였던 그는 기자들을 대표해 “후배들에게 던진 충고”였다며 사과를 거절하던 이 장관에게 엄중히 항의했고 결국 이 장관은 기자들에게 유감의 뜻을 전했다.
그는 기자협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론 개혁은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지난 1년 가까이 진행돼온 언론개혁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기존 언론의 편견을 공격하면서 스스로 편견에 사로잡히는 모습도 많이보였다.
기자협회장에 출마한 그를 보면서 후배들은 한편으로 안쓰러워 하면서도 잘된 일이라고 박수를 쳤다. 기자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고민하던 그가 스스로 현장의 십자가를 짊어지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며 끊임없이 실천하는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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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순, 올곧고 따뜻한 사람
김지영 경향신문 논설위원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과연 무엇 때문에 오늘 하루도 시간의 벼랑 앞에서 세상과, 또는 자신과 전쟁을 치르는가. 그리고 왜 그 전쟁의 뒤끝에 다시 동료들과 밤늦게 술잔을 앞에 놓고 고민하는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인간을 따뜻하게 껴안으려는 애정과 의지 때문이다. 기자협회의 할 일 역시 결국 이러한 기자들의 연대활동을 북돋우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기자협회장은 가치관과 품성, 행적이 그 지향점에 걸맞는 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김윤순 후보 만한 사람이 드물 것이라 단언한다.
나에게 경향신문 공채기수 후배인 그는 시경 캡과 사건기자, 사건데스크와 시경 캡, 몇 년의 터울을 둔 노조위원장 선·후임으로서 파란 많은 사회, 굴곡 많은 경향의 세월을 함께 울고 웃으며 손을 잡고 지내왔다. 그 결과 규정하게 된 `김윤순’은 우선 한없이 따뜻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민원인들이 신문사에 찾아와 온갖 하소연을 털어놓으면 응대하기가 귀찮아질 때도 있건만 그만은 이들을 가볍게 대하는 법이 없었다. `기사거리’가 안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끝까지 경청하고 격려하며 배웅하는 것이다.
술 한잔 입에 대지 못하는 그지만 후배들을 엄하게 질책한 뒤에는 반드시 소주집으로 불러내 위로한다. 이럴 때 후배들은 “후배를 같은 인격체로서, 동지로서 대한다”고 말하곤 한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차별하지 않고 애정으로 껴안는 `진국’의 단면들이다.
그리고 김윤순은 의지와 의리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돌쇠’, 즉 올곧은 사람이다. 우리 언론계와 경향신문의 그 숱한 자유언론 투쟁과정에서 나는 그가 `쓴 잔’을 거부하거나 도중에 훼절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경향노조의 사무국장에 이어 위원장직을 두 차례 맡게 된 것도 이런 그의 `자업자득’이다.
IMF사태 직후 구조조정으로 많은 직원들이 거리로 내몰리게 되자 그는 서슴없이 싸늘한 1층현관에 자리를 깔았다. 다른 동료들에게 `동참의 고통’을 강요하거나 사내분위기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혼자 삭발·철야·단식농성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졌다. 그 결과 많은 직원들이 구제됐으며 구제되지 못한 직원들에게는 집으로 찾아가 가족 앞에서 머리 숙여 자신의 `부족함’을 사과하며 한편으론 위로를 했다.
올곧기만 한 이는 사람과 세상의 잘못을 질타하는 데에 능하기 쉽다. 세상을 따뜻하게 껴안기도 할 때 사람 사는 맛이 나고 대안도 마련되는 것이다. 기협이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참 언론 환경을 조성하자는 과제도 마찬가지다. 희망의 싹은 김윤순 처럼 좋은 밭이어야 잘 자라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