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자생활 만 10년째인 남편에게는 바위같은 고민이 하나 있다. “마누라. 정말 큰일이구려. 내가 앞으로 살 날이 30년이 채 안 남았으니….” 이 얼마나 청천벽력같은 한탄이던가. 비록 옆구리 둘레의 외관이 가마솥 모양이기는 해도 이제 겨우 30대 중반을 넘긴 남편이 ‘시한부 인생’이라니.
그러나 남편의 주장은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어서, 일정부분 ‘팩트’를 근거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 5월 모 대학교수가 36년동안 주요일간지 부음기사에 나온 사회저명인사 2000여명의 직업을 분석한 결과 기자의 평균수명이 65세로 다른 직업군에 비해 수치가 낮았던 것이다. ‘파블로프의 개’ 학습효과 때문인지, 나 또한 남편의 생명이 사그라드는 것을 탄식하며 하루하루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회사 바로 옆에 커다란 화산 용암이 분출했다. ‘라바’(LAVA-`용암’이라는 뜻의 영어단어)라는 이름의 피트니스센터가 들어선 것이다. 5층 통유리건물에 위치한 그 피트니스센터에는 흰색 면티와 반바지를 입고 열심히 런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그대로 밖으로 내비쳐 보였다. `나도 운동을 하고 싶다.’ 운동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내 안에서 분출됐다.
‘그림의 떡.’ 나름대로 현실감각을 갖춘 나는 동경하는 ‘화산’을 곧 내 마음 속에서 지워버렸다. `행여나 엄연한 근무시간인 낮에 운동하러 갔다가 까마득한 신문사 선배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쩌나’라는 근심은 남편의 ‘30년 시한론’처럼 굳건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서울시내 중심가에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용감하게 피트니스센터를 오픈한 주인이 측은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훌륭한 영화나 소설의 묘미는 막판 3분의 반전에 있다. ‘화산’은 나의 예상을 철저히 깨뜨렸다. 우리회사 일부 젊은 기자들이 신문마감(석간신문인 문화일보는 오전 11시쯤이면 신문이 인쇄돼 나온다) 직후 이 `화산’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K국장과 H차장을 비롯해 일선 취재기자 10여명이 줄이어 이곳에서 용암같은 땀을 분출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꿀단지라도 숨겨놓은 듯한 흡족한 표정이었다. 매일 1시간 30분씩 운동하는 한 남자후배는 “열심히 운동하니까 열심히 일할 맛도 난다”며 “신문사 선후배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 운동은 합집합으로서의 운동이 아닌,부분집합으로서의 ‘운동’(골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달에 6만원인 자기 돈을 떳떳이 내고 신바람난 ‘화산’ 속 사람들을 보니, 우리 불쌍한 ‘영감’의 손을 붙들고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