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저 어둑하기만 했던 역사의 터널에서 뻗어나온 희미한 한줄기 빛을 접하고 전율한 바 있다. 그 빛은 두개의 얼굴로 다가온다. 남편을 납북시키려 사랑의 덫을 옭아매고자 몸부림쳤다는 간첩 수지 김과 유학생활 동안 북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한 사실을 자책해 안기부 건물에서 투신한 최종길 교수가 그들이다. 이 사건으로 이른바 공안정국을 조성해 이득을 보려고 했던 정권 담당자들이 줄줄이 수사기관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역사적 진실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진리를 새삼 되뇌이고 있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수지 김 사건은 7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관련자들을 만나 설득한 한 주간지 기자와 한 방송의 열정 덕에 진실을 규명할 수 있었다. 최 교수 사건은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사건 당사자들을 집요하게 추궁하고 설득한 끝에 최 교수를 수사했던 한 안기부 요원이 “7층에서 떠밀었다”는 증언을 토해냄으로써 유족들의 한을 풀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이 밝혀졌다는 반가운 마음 저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착잡한 현실 인식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 언론은 무얼 하고 있느냐’는 자책이다. 수지 김이건 최 교수건 모두 그동안 인권·시민단체들이 숱하게 문제를 제기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소수 매체 종사자의 개인적 노력에 의해, 또 수사권도 부여받지 못한 대통령 직속의 민간기구에서 주목할 만한 증언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만한 일을 언론이 먼저 규명할 수는 없었을까. 무려 20년이 넘는 험난한 세월을 넘어온 유족들이 보기에 그 시간은 너무도 길고 지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적 사건에 비해 망각의 여지가 짧았던 탓도 있겠지만 하나둘 양파 껍질 벗겨지듯이 ‘진승현 게이트’가 실체를 드러내는 것 또한 고무적인 일이다. 이것 역시 온전한 우리 언론의 몫은 아니고 어느 정도 정치적인 힘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찌됐든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 본연의 사명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낼 일이다.
우리는 의문사를 낳는 시대를 살아왔다. 조선대생 이철규 사건, 이내창씨 실종 사건, 그리고 숱한 군부대와 노동현장의 의문사 등에 대해 이제 답해야 할 시간이 됐다. 개별 언론사의 힘으로 부족하다면 관련 부처나 기관을 오랫동안 출입한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힘을 합쳐 진실을 규명하는 노력 등을 권하고자 한다. 특종보다 한 억울한 죽음의 규명이 더욱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관용을 누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광신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언론이 그같은 광신에 기대어 잇속을 챙기며 오늘의 성장을 이룬 것을 돌아보는 것은 물론, 의문사들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