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가 취재현장에 가지 못하고 여기 와 있어야 합니까. 위원장으로서 내가 권 사장과 함께 CBS를 떠날 수 있습니다. CBS가 정말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민경중 CBS 노조위원장은 지난 14일 재단이사들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이날은 CBS 권호경 사장의 3선 연임을 통과시키기 위해 재단이사회가 소집된 날이었다. 265일간의 파업을 경험한 노조원들은 방송을 중단하고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권 사장의 ‘3연임’만은 막겠다는 각오로 재단이사회를 봉쇄했고 기도와 찬송가를 부르며 목회자인 이사들을 설득했다. 결국 이날 권 사장의 ‘3연임’ 시도는 노조의 ‘저지’로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14일 오후 1시 신라호텔 23층. 노조원들이 한 두명씩 모여들기 시작해 2시가 가까워오자 취재진들과 기독교단체 회원들까지 포함해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노조는 이미 이날 새벽 3시부터 총파업에 들어간 상태였고 지역조합원들까지 모두 상경해 있었다. 뒤늦게 재단이사들이 도착했으나 먼저 회의장을 선점한 조합원들 때문에 일부는 회의장에, 일부는 같은 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때 당초 이사회 장소가 아닌 식당에 모인 권 사장 측 이사들이 사장 선임을 강행하는 것 아니냐며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그러나 물리적 충돌을 우려한 신라호텔측이 재단이사들에게 장소를 비워줄 것을 요구함에 따라 이사들은 ‘오후 5시에 속개하자’는 안과 ‘정회하자’는 안을 놓고 투표를 벌였고 8대 6으로 이사회는 목동 CBS 사옥에서 속개하기로 했다. 참석이사 19명중 5명은 기권표를 던졌다.
오후 4시경. 목동 사옥으로 조합원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10명 안팎의 이사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섰고, 노조원들이 찬송가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권 사장과 표 이사장 등 일부 이사들은 노조의 저지로 회의장에 들어서지 못했다.
“CBS가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 CBS에는 악취가 나고 있습니다. CBS가 바로 설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재단이사회를 속개하기로 한 5시가 넘도록 노조원들의 눈물의 기도가 계속되자 이사들은 이날 급한 예산안 등만 처리하고 사장 선임건은 무기한 연기한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이사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노조는 이사회가 끝난 후 총회를 갖고 “만약 이사회가 사장청빙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또다시 사장 선임을 강행할 경우 그날 새벽3시를 기해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결의했다. 이날 권 사장의 3연임은 노조의 저지로 일단 좌절됐지만 앞으로 CBS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권 사장이 또다시 3연임 시도를 한다면 CBS는 정말 방송 중단이라는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