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혐의로 조사를 받다 자살한 것으로 발표됐던 최종길 전 서울대교수가 수사관에 의해 7층서 떠밀려 타살됐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최근 의문사 관련 사건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의문사에 대한 언론 관련 보도가 의문사진상규명위의 발표 내용만 중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그동안 민가협 등 관련단체에서 의문사 관련 의혹들을 끊임없이 제기해왔지만 관심을 기울여온 언론사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종길 교수 7층서 밀었다…타살 가능성 첫 진술’(동아), ‘중정간부 최종길 교수 타살 증언’(한겨레), ‘의문사 최종길 교수 타살…수사관이 7층서 떠밀어’(중앙)….
지난 11일 대부분의 신문은 1면 머릿기사로 지난 73년 중앙정보부에서 간첩혐의로 조사를 받다 숨진 당시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가 조사 도중 스스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는 중정 발표와는 달리 수사관에 의해 떠밀려 숨졌다는 내용을 크게 보도했다. 진상규명위가 10일 중정 간부의 증언 내용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또 1997년 9월 광주 한 아파트에서 단순 추락사했다고 검찰과 경찰이 발표했던 광주대 졸업생 김준배(당시 27살·한총련 투쟁국장)씨가 추락 직후 경찰에게 구타당한 사실 등이 진상규명위에 의해 공개됨에 따라 일부 언론이 비중 있게 보도하기도 했다. 진상규명위는 이외에도 지난 84년 청송교도소 수감 중 고문사 한 박영두 사건과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보안사 조사 중 사망한 임기윤 목사 사건 등을 민주화 관련 타살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진상규명위가 의문사 규명에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언론은 그동안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다가 최근 들어 진상규명위의 발표 내용을 중계 보도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동안 보도된 의문사 관련 추적보도는 한겨레가 89년 8월 15일 변사체로 발견된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이내창씨 사건과 관련 같은 해 10월 6일자 1면에 ‘이내창 씨 사망전 안기부 요원 동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며 의혹을 제기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 한겨레는 이후 이씨와 동행한 것으로 거명된 안기부 직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함에 따라 법정다툼을 벌였지만 대법원은 96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만큼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확정했었다. 이외에는 대한매일이 98년‘민주열사 열전’을 기획 연재했고, 문화일보가 지난해 ‘의문사 집중조명’을 시리즈로 내보내는 등 관심을 기울인 바 있다. 반면 대부분의 언론은 기념사업회의 추도행사가 있을 때 짧게 보도했을 뿐이다.
그러나 아직 규명되지 않은 의문사들은 많다. ▷지난 75년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을 등산하다 변사체로 발견된 재야운동가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비롯해 ▷89년 5월 10일 변사체로 떠올랐던 조선대 교지편집국장 이철규씨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이내창씨 ▷노동계의 대표적 의문사 사건인 91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의 죽음 등이 그것이다.
내년 4월로 시한이 끝나는 진상규명위는 이 사건들을 규명하지 못한 채 종결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의문사들의 진상을 끝까지 추적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