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거듭되는 실패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로만 머물지 않는 것은 되풀이되는 실패의 과정 속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에서 미래를 보는 눈, 그것을 우리는 희망이라 부른다. 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그리고 다가오는 2002년의 아침을 기다리며 우리는 다시 희망이라는 단어를 부여안는다.
어쩌면 이 혼돈의 시대에서 희망을 품고 산다는 것이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지난 한해가 그랬다. 21세기의 첫 해인 2001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희망으로 부풀었다. 새로운 언론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설레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희망은 좌절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 있다. 그 되풀이되는 원점으로의 회귀를 지켜보면서 모두들 힘겨워 하고 있다.
실패의 두려움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언론을 지켜보면서 다시 개혁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일상에 몸을 내맡기는 것은 옳은가. 물론 실패는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미래는 희망을 갖고 그것에 도전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홈런왕 베이비 루스는 714번의 홈런을 치기 위해 1,330번의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해야 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 전 하원에서 2번, 상원에서 2번의 낙선을 경험해야 했다.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아 없어지는 ‘기회’이다. 원점에 선 언론개혁이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원점에서 무엇인가를 다시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해의 길목에서 우리는 지조와 절개의 참 언론인 송건호 선배를 떠나 보냈다. 모두가 침묵으로 불의와 타협하던 시절, 선생은 할 말을 해야 할 언론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매운 세월을 저항하고 비판하며 살아왔기에 선생의 생활은 고단했다. 저항했기에 고문당했고 비판했기에 가난과 궁핍을 벗 삼아야 했다. 그러나 고인의 삶 전체는 넉넉하고 풍요로웠다. 언론인으로서 할 말을 다하고 살았다. 권력과 언론자본은 그를 괴롭히고 쫓아냈지만 대신 그는 국민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성공한 언론인’이었다. 2000년 기자협회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생존한 언론인중‘가장존경받는 언론인’ 1위에 꼽히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그 성공의 비결은 희망이었다. 75년 그 암흑의 시대 동아일보 송건호 편집국장이 ‘현실의 길’이 아닌 ‘역사의 길’을 선택하고 사표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변화에 대한 희망’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결국 성공한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렸다면 그 역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초라한 언론인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언론개혁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진행형’일 뿐이다. 아직도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듭해야 할 미완의 과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무수한 실패를 이겨낼 수 있는 맷집이다. 그 원천은 희망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언론의 내부 개혁이 가능하다는 꿈, 기자사회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런 것들이다. 현실적 계산으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다. 언론이 ‘본래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대한 고민과 모색, 그것을 위해 ‘우직한 원칙’으로 한발 한발 나아갈 때 우리는 ‘초라한 사원’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당당한 기자’로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