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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뽀]꼬리무는 의혹사건…검찰기자실 24시

"연말 계획이요? 그런 거 묻지도 마세요"

박미영 기자  2001.12.28 11: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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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계획이요? 그런 거 묻지 마세요.”

이용호 게이트에 이어 다시 불거져 나온 진승현 게이트, 여기에 윤태식 게이트까지 터져 나오면서 검찰 출입기자들은 그야말로 한해가 어떻게 저무는지 잊어버렸다. 남들은 크리스마스다 연말연시다 들뜬 분위기에 취해 있지만, 긴장을 풀었다가는 물먹기 십상인 곳이 또 검찰 기자실이라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지검을 4년째 출입하고 있는 한 신문사 기자는 “기자실에서 40판 마감시간인 밤 12시 50분까지는 남아 있어야 한다. 특종 경쟁이 심해 물 먹을까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타사 신문 보고 추가로 확인할 일도 생기고 밤까지 조사가 이뤄지기도 하고 어쨌든 40판 나올 때까지는 기자실에서 대기한다”고 말했다.

비단 이 기자만의 상황은 아니다. 각 사마다 최소 2명씩은 12시가 넘도록 서울지검 기자실을 지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토요일, 일요일 없이 보낸 것이 벌써 오래 전 일이다. 특히 지난 12월 11일 중앙일보 보도로 신광옥 전차관이 최택곤 씨를 통해 진승현씨 자금 1억원을 건네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는 하루도 쉬지 못했다는 것이 검찰 기자들의 ‘하소연’이다.

SBS 김명진 기자는 “회사에서 휴가명령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3차례나 연기했다”며 “연이어 사건이 터지다보니 휴가 갈 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고 말했다. 바쁜데 ‘명령’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특히 방송 기자들은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생방송이 많아진 게 무엇보다 고달프다. 새벽 6시에 시작하는 아침뉴스를 전날 미리 제작해 놓을 수가 없어 검찰 출입기자들이 당번을 정해 새벽 4시 30분까지 서울지검으로 나오는 일도 피곤한 일 가운데 하나다. 어쩌다 전날 망년회 자리라도 참석한 날이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MBC 박범수 기자는 “토요일 일요일 없이 나오는 것도 피곤한 일이지만 큰 사건이 터지면 시시각각 상황을 체크해야 하고 생방송이 많아져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도 쌓인다”며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몰라 연말연시 계획은 일단 안 잡아 놓았다”고 말했다. 더욱이 잇따르는 각종 게이트를 놓고 언론사간 특종 경쟁이 벌어지면서 기자들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물 먹고 물 먹이는 상황이 매일 되풀이된다. 물을 먹으면 또 ‘반까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자들은 그야말로 악전고투다.

또 “한번 물 먹었다하면1면 톱, 못 가도 사회면 톱이어서 충격도 크다”는 게 기자들의 얘기다. 때문에 기자들은 서울지검 기자실을 각 사의 ‘최전방’이라고 표현한다. 등록된 출입기자만도 40명이 넘고 요즘같이 사건이 터질 때면 법조팀이 모두 달라붙을 뿐 아니라 타부서에서도 1∼2명 추가로 지원병이 나온다. 여기에 주요 피의자라도 소환되는 날이면 카메라기자까지 ‘뻗치기’를 하고 있어 60∼70명이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검찰 기자들은 올 한해 유난히 대형사건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지난 4월 25일 병역비리의 몸통으로 불린 박노항 원사가 검거되면서부터 정치인 및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한 병역비리 수사를 취재하느라 정신없이 보냈고, 6월 29일 언론사에 대한 탈세 고발과 8월 17일 사주구속, 9월 3일 기소가 이뤄지면서 기사화 여부를 떠나 언론사간에 치열한 정보전을 치렀다. 이어서 바로 터진 게 소위 각종 ‘게이트 사건’이다. 9월 14일 이용호 게이트 특감본부가 설치되면서 한달 간은 꼼짝없이 이용호 게이트에 매달려 있던 검찰 기자들은 숨돌린 틈도 없이 이어진 진승현 게이트와 윤태식 게이트로 현재까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난마처럼 얽혀있는 이 두 사건도 쉽게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기자들은 진승현 게이트나 윤태식 게이트가 연초까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정·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검찰수사가 정치권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어 기자들의 고달픈 행보는 ‘임오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