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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언론비리…어쩌다 이 지경까지

현금·주식·법인카드에 자동차·선물까지 '닥치는대로'

김상철 기자  2002.01.16 1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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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윤리 실종…수법 ‘저질’ 수뢰액 공무원 수십배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갖고 있는 기자들에게는 다른 어떤 직종의 종사자들보다도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우리는 취재보도 과정에서 기자의 신분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으며,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사적인 특혜나 편의를 거절한다.”

관련기사 2·3·4·7면

기자협회 윤리강령 중 일부다. ‘윤태식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언론인들의 혐의를 보면 윤리강령이 무색해지는 건 순간이다. 다른 직종 종사자들의 비리사건 보다 ‘죄질’도 나쁘다. 기사를 써준다는, 혹은 보도를 막아준다는 대가로 주식과 현금을 받았고 취재원으로부터 오히려 각종 사적인 특혜나 편의를 제공받았다.

지금까지 구속된 언론인들의 혐의는 배임수재와 사기 두 가지다. 검찰에 따르면 배임수재의 경우 기사를 대가로 온갖 ‘사적인 특혜나 편의를 제공’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4일 구속된 최영규 전 서울경제 부장은 99년 12월 회사 제품 기술 시연회 관련 기사를 잘 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윤씨한테 현금 100만원을 건네 받은 것을 시작으로 2억원 상당의 패스21 주식 1000주를 받았다. 또 2200만원 상당의 그랜저XG, 2900여만원을 사용한 패스21 법인카드, 400만원 상당의 골프채 1세트까지 넘겨 받았다.

지난 8일, 11일 잇따라 구속된 매일경제 이계진 전 기자, 민호기 전 부장 역시 홍보용 기사 청탁과 함께 그 대가로 주식을 액면가 혹은 무상으로 취득했다. 각각 1억7800만원 상당의 주식 1400주와 현금 1200만원, 1억6000만원 상당의 주식 1300주와 현금 900만원을 받은 혐의다. 지난 6일 구속된 정수용 전 SBS PD는 패스21 관련 보도를 막아주겠다고 ‘사기를 쳐’ 윤씨로부터 주식, 현금, 법인카드 등 2억5000여만원을 받았다.

이같은 양상은 사회 일반의 비리사건과 비교해도 그 액수나 혐의 내용에 있어 정도가 심하다. 노희도 정보통신부 전 국장이나 철도청, 서울지하철공사 관계자 2명은 패스21 기술 도입 대가로 4000만원 상당의 패스21 주식 200주를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 신광옥 전 법무부 차관은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최택곤씨로부터 진씨 돈 18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같은 사건으로 구속된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은 진씨로부터 금감원 등의 조사 무마 명목으로 500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이번에 구속된언론인들의 혐의가 대가성으로 억대의 돈이나 주식을 받고 자동차, 법인카드까지 요구하거나 건네 받았다는 점에서 일반 뇌물사건에 비해 그 ‘죄질’이 훨씬 심각하다.

언론계에서 “이 지경까지”라는 한탄과 “이 사건 뿐이겠는가”라는 우려가 교차하는 것도 이같은 심각성에서 비롯된다. 98년~2000년 벤처 취재를 담당했던 한 신문사 경제부 기자는 “이번 사안이 벤처 업계가 한창일 때 언론계 안팎에서 나돌던 말들이 사실이었음을 보여줬다면, 언론인이 연루된 벤처비리가 추가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강호 언론노조 부위원장은 “이러다간 언론계가 대표적인 부패집단으로 꼽힐 수도 있는 일”이라며 “언론의 자정과 개혁은 특정사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계 전반의 절박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 부위원장은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해왔던 언론개혁이라는 명제가 단순히 도의적인 과제가 아니라 언론이 살아남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존의 문제임을 절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