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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 이러고도 남을 비판할 수 있는가

- 언론개혁 첫 걸음은 '자정'

편집국  2002.01.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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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에 달린 모자 속에 다시 챙 달린 모자를 쓰고 머플러로 눈 밑까지 가린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홍보성 기사를 써 주고 윤태식씨의 패스21로부터 주식 등 2억원이 넘는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 14일 구속된 서울경제 최영규 전 부장이 구속되는 모습은 오늘 우리 언론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일부 언론인들이 패스21로부터 주식 등을 받은 사실에 동료 기자로서 우리는 부끄러움을 떨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부패와 비리를 감시하고 차단해야 할 언론이 부패를 부추기고 비리의 한 축으로 기능해 왔다는 자괴감에 얼굴을 들 수 없다. 머리 숙여 충심으로 국민들에게 사과 드린다.

우리는 소속 기자 등 일부 임직원이 패스21로부터 주식이나 돈을 받은 언론사들이 이 회사의 홍보에 조직적으로 관여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일선 기자와 PD에 이어 데스크를 맡고 있던 언론사 간부들이 배임수재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고 김영렬 전 서울경제 사장이 윤씨의 대정부 로비에 연루된 사실에 참담한 심정을 감추기 어렵다.

지난 주 본보의 취재 요청에 “윤태식씨가 아내의 주민등록등본을 달라고 해 줬을 뿐 패스21 관련 보도에 대가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해명한 최 전 부장은 주식 말고도 윤씨로부터 고급 승용차와 골프채를 받았고 패스21의 법인 카드를 빌려 2800만원 어치를 긁었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설령 대가성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쯤 되면 ‘어떤 명목으로도 받을 수 없는’ 촌지의 수준도 아니다. 패스21의 대주주이기도 했던 서울경제 김 전 사장은 자사 신문의 홍보성 기사 덕에 이 회사의 주가가 오르자 주식을 내다 팔아 50억원 상당의 시세차익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제2 한강의 기적… ”이니 “세계 지문인식 시장 석권 가시화…”니 해 가며 이들이 금품을 받고 써 준 낯뜨거운 기사들은 패스21의 주가를 띄웠고,그 결과 투자자 등에게 특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피해를 입혔다. 그런 데도 해당 언론사들은 독자들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자사 소속 언론인들이 연루된 사실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일부 신문들은 ‘몸통론’을 제기해 벤처 비리에서 언론의 존재와 역할은 ‘깃털’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드러내 보였다. 독자들에게 언론의 대가성 보도는 정·관계의 대가성 부당 지원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패스21의 날개 없는 주가가 깃털 없이도 그토록 높이 날 수 있었을까? 가당치 않은 윤씨의 ‘벤처 신화’가 그렇게 확대 재생산될 수 있었을까?

해당 언론사들이 대가성 보도에 관여한 임직원들을 회사 울타리 밖으로 내모는 것으로는 면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경제 관련 부서 기자·데스크·편집자의 주식 보유 내지는 보유 금지 규정을 만들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사과하기를 이들 언론사에 권한다.

IMF 체제를 통과하면서 우리 언론은 언론기업 안팎의 자본의 경제적인 통제에 더 약한 체질이 돼 버렸다. 최근 몇년 새 사세가 급신장한 일부 언론사들을 무비판적으로 벤치마킹하려는 최근의 풍조에서 우리는 언론기업의 ‘정체성 위기’를 본다. 이런 풍토가 이른바 ‘벤·언 유착’이 뿌리를 내리는 토양이 됐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 시대 언론기업이 추구할 것은 과연 비즈니스 모델인가?

모험정신을 잃어 버리고 돈놀이에 골몰했던 일부 벤처들의 빗나간 행각에 편승해 일부 언론인들이 돈벌이에 눈이 벌갰던 배경에 권력은 물론이고 돈의 힘에도 머리 숙여서는 안 되는 언론이 취한 이런 이중적 태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자율적인 언론개혁의 첫 단추가 다시 자정이라고 믿는다. 자정 없이는 언론개혁이 완결될 수 없다.

동시에 실천의 의지와 노력이 결핍된 자정 선언이 얼마나 헛되고 부질없는지 절감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들을 모색하고 제시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