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홍보대행업무를 맡고 있는 N씨는 유명 요리 전문가를 한 유력 신문사 문화부 J기자에게 소개했다. 입사 4년차의 J기자는 설명을 듣더니 기사를 쓰겠다며 먼저 “사진을 그냥 쓰면 상태가 안좋으니까 작가를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사진 찍는 데에만 30만원이 들었다. 기사가 나간 이후 J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보자는 것.
‘사정상’ 자리는 서울시내 가라오케에서 만들어졌고 N씨는 참석자 면면에 다시 한번 놀랐다. J기자와 동행한 사람은 3명으로 일전에 나이트에서 만난 여자, 모 클럽에서 만난 여자 등으로 소개했다. N씨는 “그날 쓴 돈의 액수를 떠나 ‘어린’ 기자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는 지 납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기자를 흔히 ‘신 구악’이라고 부른다.
‘비리 불감증’ 남의 일인가
업체를 담당하는 한 기자는 최근 대기업 홍보부장에게 직접 들은 얘기라며 이런 사례를 전했다. 하루는 일간지 모 기자가 골프 부킹을 요구하더라는 것. “대충 기자들 몇 명하고…”식으로 얘기를 하길래 예약을 했더니 전날 “갑자기 다른 사람 약속이 다 취소됐다. 부인하고 나갈 테니 같이 치자”는 전화가 왔다. 이 부장은 3명이 칠 요량으로 혼자 골프장에 나갔지만 결과적으로 2대2 짝이 맞았다. 모 기자가 부인과 부인의 친구까지 데리고 온 덕분이었다. 이 부장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 아니었겠느냐”며 씁쓸해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이같은 사례를 보면 기자윤리가 시스템과 사람, 어느 부분이 우선하는 문제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윤리강령을 강화한다고 해서 기자비리가 없어지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자와 관련된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계 안팎에서 자성을 촉구하는 것은 공허하지만 그래서 절실한 면이 있다.
윤리강령만으론 해결 안돼
98∼99년 벤처업계를 담당했던 한 기자는 “실제로 IMF 이후 단말기 보고 있으면서 10만원, 20만원 단타매매를 하는 기자들을 많이 봤다. 기사를 써주고 주식 50주, 100주씩 받는 기자들도 그때 적잖이 접해봤다”고 말했다. IMF로 언론사 경영난이 심화되고 다시 벤처열풍을 맞으면서 빚어진 풍경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경영 악화에서 파생된 여러 양상이 기자윤리를 도마에 올린 경우도 적잖았다. “회사 지원이 없는 형편에서 직접 현장에 나갈 볼 기회는 제한돼 있다”는논리와 함께 해당 업체에 항공료, 체재비 일체를 지원받는 해외취재가 빈번해지기도 했다. 기자들의 광고 유치도 같은 맥락이다.
연합뉴스의 한 기자는 “지난 연말, 예산을 다 쓴 상황에서 기자들이 광고 달라고 채근해 힘들다고 한탄하는 홍보실 직원을 여럿 봤다”고 말했다. 인터넷매체에서 근무하는 전직 경제부 기자는 “단순히 광고유치에 따른 ‘리베이트’를 바라고 하겠느냐”고 반문하며 “광고 수주 자체가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풍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기자들이 밖에서 ‘손벌리게 하지 않는’ 시스템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기자 개인의 ‘윤리 불감증’ 치유 필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윤리를 저버린 언론의 존재가치를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지난 2000년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63%는 ‘우리나라 기자들은 윤리의식이 낮다’고 답했으며 54%가 ‘21세기에는 기자들의 윤리의식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초 ‘윤태식 게이트’로 또다시 부각된 기자윤리 문제의 중심에, ‘제도’에 앞서 ‘기자’가 있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