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부산 동래구 사직동 아시아드 주경기장 개장 행사로 나이지리아-한국의 축구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장은 올해 9월 29일 개막하는 제14회 부산아시아경기대회(AG) 주경기장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한국-폴란드 전 등 3시합의 구장으로도 활용된다. 당시 5만명이 넘는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워 부산AG와 한일 월드컵의 성공을 예견케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부 스포츠신문과 일간지 등이 “부산에는 AG만 있고 월드컵은 없었다”라는 기사를 싣고 부산시와 부산 시민들의 뜨거운 AG 열기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또 일부 언론은 이 경기장에서 AG가 열린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거나 축소 보도하면서 월드컵 경기장이라는 점만 부각시켰다.
시간을 옮겨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올해 1월 1일 사이. KBS, MBC, SBS 등 이른바 중앙 TV방송 3사는 밤 늦게부터 새벽까지 몇 시간에 걸쳐 연속 특집방송을 꾸며 내보냈다.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지켜보던 많은 부산 시민들과 부산시 및 부산AG 조직위원회 직원들은 한결같이 분통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프로그램 진행자나 참가 연예인 등 대부분의 방송 관계자들이 오로지 월드컵 이야기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된 3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부산AG가 분명하게 언급된 것은 단 한번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신년 축하 인사를 할 때였다.
중앙 언론의 부산AG 홀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부산AG 조직위에서 내부 갈등과 각종 파문으로 술렁일 때는 ‘AG 때리기’에 전력을 다해 전 국민들로부터 “부산AG가 제대로 열릴까”라는 걱정을 사는 데 ‘일등공신(?)’이 되더니 정작 대회 개막을 8개월여 앞둔 지금에는 AG 이야기를 전혀 전달하지 않고 있다.
각 언론마다 월드컵 고정란을 배치하면서 연일 월드컵 보도에 앞장서는 반면 AG 소식은 전혀 보도되지 않거나 기껏 지방판에 실리고 지역 TV방송 뉴스에만 등장하기 일쑤다. 부산AG 조직위에서는 각종 보도 자료를 부산 지역 언론사 뿐만 아니라 중앙 언론에도 꼬박꼬박 넣고 있지만 반영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중앙 언론의 논리는 한결같다. AG는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여서 전 국민의 참여와 관심 속에 개최되는 월드컵 대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AG는 이미 우리 나라에서 한 번 열린 바 있어‘한계효용의 법칙’에 따라 신선감이 떨어진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밖에 부산AG 조직위에는 부산 사람만 가득 채워져 있고 중앙 인사들은 배제돼 있어 스스로 지역 대회로 자처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같은 설명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 걸쳐 있는 ‘서울 공화국 주의’의 또 다른 면모 이외에는 다름 아닌 것 같다. 다소 과장스럽기는 하지만 만약 올림픽이 부산에서 열리더라도 중앙 언론은 보도에 인색할 것이라는 말조차 나올 정도다.
중앙 언론은 최근 몇년 동안 지방판을 활성화하는 등 다양한 지방 공략 방안을 마련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방에서 열리는 행사나 사건 등을 애써 축소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과감하게 보도하는 것만이 지방 독자들과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지름길임을 알아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