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한국기자상에는 89개 작품이 출품됐다. 1차 심사에서는 평점 8.0 이상을 취득한 작품이 50개나 선정됐다. 출품작의 절반 이상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는 것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경합이 치열했음을 뜻한다. 2차 심사에서는 7개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는데 예년에 비해 산표가 없는 편이었다. 이들 작품 중에서 3개가 대상후보로 추천을 받아 1차 투표를 했더니 2개 작품으로 압축되었다. 다시 두 작품을 놓고 결선투표를 실시하여 한국기자상 대상을 결정했다.
대상의 영광은 한국일보의 ‘이용호 게이트 특종보도’에 돌아갔다. 대검찰청이 이용호씨에 대해 수사를 착수할 당시에만 해도 특정 지연-학연이 연루된 단순한 금융비리사건에 불과한 듯했다. 그런데 한국일보가 서울지검이 5개월간 수사를 하다가 무혐의 처분한 바 있고, 여기에 검찰간부들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보도로 말미암아 검찰의 신뢰는 바닥으로 실추했고, 특별감찰부가 구성되었으나 그것도 국민의 불신을 사서 다시 특별검사가 도입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결국 검찰 수뇌부가 퇴진했지만 세도가와 권력기관의 개입이 속속 드러나면서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주고 있다.
취재보도부문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된 동아일보의 ‘수지김 사건 7년 추적기’는 대상을 놓고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다. 이 작품은 아내를 살해하고 간첩누명을 씌운 혐의자의 허위진술을 정보기관이 공안정국에 이용했던 사실을 7년간 추적한 집념의 결실이다. 탐사보도의 전형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의 감투정신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권위주의 시대의 안보논리가 낳은 이 비극적인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다. 살인혐의자 윤태식씨는 벤처기업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했고 그가 벌인 돈잔치에는 다수의 권력자와 언론인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기획보도 부문에서는 중앙일보의 ‘현장리포트 서울 최대의 달동네 신림동 난곡’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한국언론은 소외계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저소득층 밀집지역인 난곡에서 표피적인 관찰에 의존하지 않고 과학적-체계적 탐사기법을 동원하여 빈곤문제를 해부했다. 빈곤의 고착화-세습화 실태와 함께 빈곤정책의 문제점도 부각시켰다. 이 작품이 동원한정밀조사기법은 언론계 내부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기획보도 부문에서 매일신문의 ‘UR 10년ㅡ우리 농업 어디로 가나’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방신문이면서 농업문제를 전국적 의제로 설정하여 구조적 취약점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풍부한 통계를 통해 농촌경제의 심각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중국농업의 위협적 성장에 대비한 경고도 담고 있다. 같은 부문에 출품한 한국경제의 ‘대우패망 비사’도 큰 호평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수상의 기회를 놓쳤음을 밝혀둔다.
지역취재보도 부문에서는 국제일보의 ‘부산 AG 굴욕적 이면계약ㅡ볼모성 2천만 달러 예치’가 단독으로 수상작에 뽑혔다. 부산 조직위가 아시아올림픽평의회와 불평등계약을 맺은 사실을 심도있게 고발한 작품이다. 부산 조직위가 일종의 이행기금으로 2000만 달러를 외국은행에 예치한 이면계약의 내막을 밝혀낸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예치금을 몰수한다는 단서까지 있다니 굴욕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지역기획보도 부문에서는 여수MBC의 ‘르포 섬’과 대전MBC의 ‘인삼 2부작’이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르포 섬’은 환상적인 낙조나 평화로운 정경에 가려진 소외지역-소외계층의 생생한 삶과 애환을 엮어낸 드라마 같은 작품이 27편이나 이어진다. 그 곳은 쇠락해 가는 버려진 땅이고 그 삶은 고달프기 그지없다는 이야기를 숨소리까지 담았다. 혼자 취재, 촬영, 편집하는 VJ저널리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인삼 2부작’은 고려인삼에 대해 갖고 있던 일반인의 상식을 바꾸어 놓은 작품이다. 인삼하면 으레 한국이 종주국이라고 자부했고 국제시장에서도 응당 그런 대접을 받는 줄 알았더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당국-업자의 방심과 나태로 중국산-미국산에 밀려 인삼집산지인 홍콩에서 시장점유율이 고작 3%에 불과한 약초로 전락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한마디로 고려인삼이 자랑하던 전통과 명성을 잃어버려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