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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언론 이렇게 통제했다

이수기 경남일보 논설고문 79∼80년 보도지침 공개

김상철 기자  2002.01.30 13: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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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 불가, 억제, 확대, 유도…. 군사정권의 극단적인 ‘언론 통치’ 자료가 뒤늦게 빛을 봤다. 79~80년 당시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이 공개된 것. 이수기 경남일보 논설고문은 79년 3월 10일부터 경남일보가 경남매일에 통합되기 직전인 80년 11월 24일까지 1년 8개월간 언론사에 통보된 보도지침을 모아 <보도지침과 신문의 이해>를 펴냈다.

보도지침은 86년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가 자료를 제공, 말지를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된 바 있다. 말지는 85년 10월~86년 8월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통보한 보도지침 584건을 폭로했으며 이번에 공개된 내용은 이보다 5~6년 앞선 것이다.

이 책에는 중앙정보부와 계엄사가 언론사에 ‘하달’한 보도지침 283개항 사본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군사정권이 언론의 ‘데스크역’을 맡고 있던 당시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음은 물론이다.

유형별로 보면 ‘금지’나 ‘불가’ 사례가 가장 많다. ‘YH 신민당 농성사태 보도 금지’(79년 8월 10일) ‘신문에서 민주회복이라는 용어는 사용 불가’(79년 9월 11일) ‘시해사건 관련기사 금지’(80년 2월 28일) 등이다. ‘언론단체 통·폐합 및 관련사항’(80년 11월 13일)이나 ‘언론매체 통·폐합 관계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노출하거나 부정적 방향으로 유도하는 해설 및 사설기사’(80년 11월 17일) 역시 ‘무조건 불가’였다.

‘억제’나 ‘축소’ 유형도 있었다. ‘미군 철수 보도는 한·미 양국 정부의 공식 발표사항 이외의 외신이나 국내 기사에 대하여 철저히 보도 억제토록’(79년 6월 23일) ‘KAL 화재사고 관련 국제신뢰 상실 및 국내 관광객 유치에 저해되는 내용 선별 처리하되 전적으로 축소보도’(80년 11월 21일) 한다는 식이다.

세세하게 기사 배치를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80년 10월 18일 통보된 ‘고려대 휴학 사태에 관한 지침’은 ‘1면 5단 범위 내에서 문교부 발표내용을 해설에 필히 첨가 게재토록 함(좌측 TOP도 무방)’이라고 적혀있다. 또 ‘데모를 규탄하는 각계 반응 및 사설 특집 게재, 전체적인 논조는 자제와 인내의 선을 넘어 강력 응징 방향으로 유도’라고 덧붙였다.

80년 11월 ‘민족해방 전선 관련 보도지침’에도 ‘면TOP으로 전모의 주지 보도, 사회면에 각종 증거자료 사진 보도’라는 주문이 실려 있다.

283개항을 사례별로 분류하면 정치문제가 95개항으로 가장 많았고 교육·학원, 공직자 비리 등사회문제 64개항, 대북 안보 54개항, 경제 관련 50개항 순이었다.

이같은 내용들이 자료로 남겨지게 된 사연도 눈길을 끈다. 군사정권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지침을 각 언론사에 전화로 통보했다. 어떤 때는 하루 2~3개항씩 보도지침이 떨어지자 더러 무슨 지침을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보도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한 것. 이 때문에 당시 경남일보 편집국은 전화를 받은 사람이 ‘보도지침 메모장’에 기록하기로 결정했고 이것이 문서로 남겨진 근거가 됐다.

이수기 논설고문은 “집을 수리하려고 책장을 정리하다 ‘보도지침 메모장’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됐다”며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공공연히 언론통제를 해놓고도 한번도 이를 시인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불행했던 과거사와,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점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