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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취재비·과소비 비리 부른다

'원칙' 지킬 수 있는 '회사지원' 절실

서정은 기자  2002.02.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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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형 소비·선배만 내는 풍토도 문제





“기자 개개인의 머리와 가슴에 호소하는 기자윤리 확립은 갈 길이 요원하다. 취재비 현실화와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촌지 근절 등 각종 비리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윤태식 게이트’의 언론인 연루 사건으로 추락한 기자윤리를 회복하고 각종 비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취재비 현실화 등의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자 개인의 양식도 문제이지만 취재비가 얄팍하고 해외출장 지원도 인색한 현실은 결국 촌지와 향응을 ‘관례’로 ‘용납’하게 만들고 기자들을 부정과 비리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 기자들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얄팍한 취재비가 윤리의식을 무너뜨리는 구조적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취재원으로부터 일체의 금품을 제공받지 않고, 업무수행의 일부로 볼 수 없는 향응을 거부하며 모든 해외취재와 출장을 언론사가 부담한다는 ‘원칙’과 ‘윤리강령’을 준수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회사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의 중앙 언론사들의 취재비 수준은 하루 7,000원 정도다. 한달로 치면 20∼30만원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경찰과 검찰 기자들은 이보다 조금 많아 하루 1만원∼1만3,000원을 지급받는다. 한 언론사의 경우 “사진기자에게 취재비로 월 3만2,500원을, 경찰기자는 월 20만원대를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의 경우 취재기자가 카메라 기자와 카메라보조, 운전기사 등 3명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경비가 더 많이 든다. SBS는 2월 1일부터 IMF 이후 평기자 기준 월 30만원이었던 취재비를 40만원으로 다시 회복시켰다. 사건팀장, 법조팀장, 국회반장에게는 취재비 외에 팀별 활동비 명목으로 월 100만원을 추가 지급키로 했다. 그동안 개인 돈으로 써왔던 팀원 회식비용 등을 이제는 회사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MBC도 일반 부처 출입기자는 월 20만원, 경찰기자는 월 50만원, 경찰팀장 100만원 등으로 지급하고 있다.

반면 KBS 기자들은 최근 하루 7,500원∼1만원인 취재비를 3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회사에 건의했다. 현재의 취재비로는 4명의 점심 값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KBS 한 기자는 “식대, 주차비, 교통비 등이 만만치 않고, 대부분 취재기자가 점심을 사기 때문에 가끔은 일부러 오후에 취재 일정을 잡기도 한다. 또 취재원이 밥을 산다고 하면그냥 얻어먹는 일도 많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취재비의 실비 정산 원칙을 확립한 대구 MBC 사례는 기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대구 MBC는 기자의 취재활동시 드는 모든 비용을 회사가 부담한다는 원칙 아래 일주일 단위로 교통비, 주차료, 식대 등 모든 취재 경비를 청구하고 있다. 대구 MBC 한 기자는 “조금 부지런하게 취재했다 싶으면 주당 13∼15만원 정도의 취재비가 들고 청구하면 회사가 모두 부담한다”며 “이같은 실비 정산 원칙을 결의한 이래 촌지를 수수한 기자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기자들 스스로 만든 소비행태가 촌지 유혹을 부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성회용 SBS 경제부 차장은 지난달 30일 ‘기자윤리 재확립 및 실천방안’을 주제로 한 기자포럼에서 “기자들의 과소비 문화와 선배가 돈 내는 풍토가 촌지 유혹을 낳고 있다”며 “월급으로 감당도 못하면서 허세부리지 말고, 먹고 노는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 방송사 기자도 “예전엔 촌지를 받아 후배들 술값으로 썼지만 요즘은 촌지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아예 술자리에 스폰서를 부르기도 한다”며 “이런 잘못된 관행을 없애려면 선배가 무조건 술을 사고 비싼 양주에 고급 술집만 찾는 과소비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