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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보도 쟁점 부상…언론 '특정후보 지지' 공개선언

'된다-안된다' 특정후보 지지 '뜨거운 감자'

찬반양론  2002.02.06 11: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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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마이뉴스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MBC 100분 토론이 이에 대한 찬반 토론을 벌이면서 ‘언론사의 특정후보 지지 선언’이 언론계 화두로 떠올랐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특정후보 편들기’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언론도 미국처럼 공개적으로 특정후보 지지선언을 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반면 시기상조 또는 반대입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언론사의 사세 확장이나 이익에 기울어져 특정후보지지 선언이 오히려 공정성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자협회는 언론사의 특정후보지지 선언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어봤다.





<겉만 중립 속은 편파…“이젠 솔직해지자”>

찬성-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오마이뉴스는 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할 계획이다. 투표를 약 3일 정도 앞둔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발전 방향에 좀 더 가까이 접해 있는 인물은 이 후보”라고 선언할 것이다.

오마이뉴스의 이런 특정후보 지지 선언은 며칠간의 이벤트가 아닌 몇달간의 과정이 될 것이다. 1만6천여 뉴스게릴라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신문인만큼 여야 후보가 결정되는대로 ‘다음 대통령의 자격’에 대한 공론화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여야 후보를 대상으로 그런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인터뷰, 토론, 심층취재 등을 특정후보 선언 직전까지 할 것이다.

특정후보 지지 선언은 아직 한국언론사에서 시도되지 않았다. 실정법(선거법) 위반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마이뉴스가 선언을 하려는 것은 다음 몇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다. 선관위는 현행 선거법에 대한 유권해석에서 언론의 특정후보 지지 선언을 불허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다. 언론은 그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방송처럼 전파의 희소성 때문에 공익을 위해 표현을 제약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신문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이나 영국의 신문사들이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인터넷은 말할 나위가 없다.

둘째, ‘이중성의 종말’을 위해서도 특정후보 지지는 필요하다. 그간 한국 언론들은 대선 때마다 왜곡편파보도 시비에 휘말렸다. 그러나 그들은 단한번도 우리는 이런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해본 적이 없다. 실제로는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으면서 독자들에게는 그것을 감추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언론뿐 아니라 진보언론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정후보 공개지지는 ‘이젠 좀 솔직해지자’는 운동이기도 하다.

셋째, 특정후보 지지는 후보자들에게 정책대결을 유도하고 언론에게는 정책보도를 유도할 것이다. 언론이 특정후보를 지지하려면 그 기준을 만들 것이며 따라서 후보들의 정책적 차별에 대한 보도가 많아질 것이다. 후보들도 자연 지역감정에 기대거나 이미지를 중시하기 보다는 정책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 선거는 ‘누가 되느냐’에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생산적 공론화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선거법에서 언론의 특정후보 지지를 허락하는 것이 곧 ‘모든 언론은 특정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지지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언론의 자유다. 독자는 그런 자유의 장에서 언론의 선택들을 참고할 뿐이다.







<편집국 독립·토론문화 부재 ‘시기상조’>

반대-정연주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신문이 사설을 통해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를 공식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지지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첫째 조건은 편집국의 완전 독립이다. 미국의 경우 어느 신문에서 사설을 통해 후보 지지를 밝히기는 해도 뉴스 제작에서는 독립적인 제작을 한다. 물론 조그만 지방지들 경우는 다르지만, 영향력 있는 신문들은 거의 예외 없이 편집이 독립돼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설에서 누구를 지지하건 뉴스 제작에서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나라 경우, 특히 신문시장의 70%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는 조중동의 경우 사주의 영향력이 소유 경영 뿐 아니라 편집에도 거의 절대적이다. 이런 경우 어느 후보의 지지는 단순히 사설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고 뉴스 제작에 바로 영향을 준다. 지금까지 신문제작이 그렇지 않았는가. 오히려 후보의 공식 지지는 뉴스 제작에서의 편향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

둘째, 신문사 사이에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보수성향의 신문과진보성향의 신문, 한나라당 후보 지지의 신문과 민주당 후보 지지의 신문이 숫자와 영향력에서 비슷하게 균형을 이뤄야 한다. 미국은 공화당 지지와 민주당 지지의 신문들이 숫자와 영향력에서 비슷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경우 그런 균형이 없다. 족벌사주들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있는 족벌신문들이 대자본의 힘으로 신문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이 구조가 깨어지지 않는 한, 균형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균형이 없는 상황에서 공개 지지는 어느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셋째, 우리의 토론문화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군부 독재시절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구도에서나 의미가 있었던 ‘여당지’ ‘야당지’ 논쟁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고, 이게 언론인가 싶을 정도로 막가파 식의 비판이 ‘야성’이라고 평가받는 그런 상태에서 공개지지는 쉽게 ‘기관지’라고 규정될 것이다. 후보 공개지지를 하고 있는 미국에서 가령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가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사설을 통해 공개 지지하였다고 하여, 그 신문들을 ‘민주당 기관지’라고 하지도 않으며,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하여 그 신문들을 ‘여당지’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여당지’ ‘야당지’ 식으로 신문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단세포적 사고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세 가지 조건들이 갖춰지는 성숙된 상황에서나 후보 공개 지지가 그 본래의 의미를 갖게 된다. 세 가지 조건 가운데서도 가장 절실한 것은 편집권의 독립이며, 특히 족벌사주들로부터 편집권이 독립되는 것이다. 그렇게 돼야 신문은 편집국 밖의 영향력에 의해서가 아닌 기자들의 프로정신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