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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준 재탈북기 오보 판명되자 국정원에 '화풀이'

김동원 김상철기자  2002.02.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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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탈북자 유태준씨(사진)의 거짓 증언을 검증 없이 액면 그대로 보도해 오보를 내놓고도 ‘남의 탓’으로 일관하고 있다. 관련기사 3면

정부당국이 유씨에 대한 신문결과를 공개,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유씨의 재탈북기 가운데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달라, 결과적 오보를 내놓고도 이에 대한 반성은커녕 곧 태도를 바꿔 유씨와 국가정보원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언론은 지난 13일 유씨가 코리아나호텔에서 자신의 재탈북 과정을 설명한 것과 관련, ‘극적 탈출’ 등의 제목을 달아 14일자 1면 스트레이트와 사회면 머릿기사 등으로 크게 보도하면서 유씨의 발언 내용을 전달했다. 국가안전보위부 감옥의 담장을 넘어 탈출했다는 유씨 증언과 관련, 정치범 수용소 경험이 있는 다른 탈북자가 못미더워 하는 연합뉴스의 반응 기사를 일부 인용하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의문점을 제기한 것은 중앙일보와 국민·문화 등 14일자 석간뿐이었다.

그러던 언론은 14일 오후 정부 당국자가 유씨의 발언 가운데 관계기관 합동신문 내용과 다른 것이 있다고 설명한 데 이어 국정원이 유씨의 거짓말을 증명하는 참고자료를 내놓자 15일부턴 유씨의 대공 혐의점을 거론하고 국가정보원의 ‘거짓말 방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국정원의 발표를 놓고 볼 때 결과적으로 14일자 자신들의 유씨 보도가 오보로 판명 났음에도 이에 대해선 아무런 반성이 없었다. 한국일보가 16일자 이번 유씨 보도에 ‘가담’했던 한 사회부 기자의 기명칼럼에서 “언론의 ‘선정주의’에 자괴감을 감추기 어렵다”고 밝힌 게 전부다.

이같은 유씨 재탈북 관련 ‘오보’사태에 대해 한 통일부 출입기자는 “발언 내용의 신빙성을 차분히 점검했다면 충분히 의문점을 제기할 수 있었던 사안”이라며 “탈북자의 일방적 증언을 검증 없이 보도했을 때 초래될 문제점을 되새겨 보게 하는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강병태 논설위원은 지난 16일자 ‘탈북과 퍼주기’란 기명칼럼에서 “언론이 황당한 재탈북 스토리에 솔깃한 것은 인권 상황 등 북한 체제의 악덕을 부각시키는데 집착하는 낡은 습관 탓”이라며 “이제 탈북자 회견 따위는 없애고, 북에 남은 동포를 조용히 돕는 게 민족적 양심을 따르는 길”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씨의 거짓말 증언과 관련해선 일부 월간지와의 ‘사전 조율’ 의혹이 제기되기도했다. 한국일보는 지난 16일자 ‘유씨 거짓증언 각본 의혹’ 제목의 기사에서 “유씨가 기자회견에서 탈북 과정을 과장되게 말한 것은 일부 월간지 등에서 단독 인터뷰 등을 할 경우 돈을 주겠다고 제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이와는 별개로 조선일보는 지난해 3월의 유태준씨 공개처형설 보도와 관련, 지난 16일자 독자면에 “당시 보도는 탈북자들의 증언과 정보소식통의 확인을 토대로 한 것이었으나 유씨가 북한을 탈출해 재입국함으로써 오보로 판명났다”며 사과문을 게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