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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용한 혁명]

<지면전략>독자 중심·열린 보수…나만의 색을 가져라

서정은 기자  2002.02.20 15: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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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해 편집위원회 구성과 가판 폐지, 그리고 어젠다 위원회 구성 등 나름의 개혁 조치를 이어 오고 있는 중앙일보에 언론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면 차별화 전략으로 요약되는 중앙일보의 움직임은, 업계의 수위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한 대목이다. 이런 지면 차별화 전략과 함께 중앙일보에서 눈여볼 볼 것은 그들의 종합미디어그룹 전략이다. 타 매체와의 전략적 제휴나 새 사업 진출 등 현상적 측면만 부각돼 언론계 일부에선 몸 불리기 정도로 이해되고 있는 중앙의 미디어그룹 전략은 JMN(중앙일보미디어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앞서의 지면 차별화 전략도 포괄하는 그랜드 플랜이라고 볼 수 있다. 중앙일보의 지면 차별화 전략과 JMN으로 상징되는 매체전략을 살펴봤다.







‘집중해부, 이회창 대세론’중앙일보가 지난 15일자 신문에서 선보인 이 기획 기사는 최근 계속되고 있는 중앙일보의 변신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굵직한 사례였다. ‘각종 조사서 1위…끝까지 갈까’라는 제목으로 이 총재 대세론의 허와 실을 점검하면서 “이회창 총재의 대세론이 확산돼 대선 승리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일침을 가한 대목은 세간의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지난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편들기’라는 비판을 받았던 중앙의 행보와 비교할 때 상당한 변화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독자의 궁금증을 반영한, ‘독자 중심형’ 기사로써 다른 신문의 정치면과 차별화를 이룬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파격적 제안 관심

중앙일보의 변신, 지면 차별화 전략에 쏠리는 언론계 안팎의 관심이 상당하다. 새해부터 선보이고 있는 ‘10대 국가과제’ 가운데 ‘예산 1% 대북 지원’이라는 ‘파격적’ 제안이 호평을 받았는가 하면 홍석현 회장의 아이디어로 출발한 ‘의원 노선 대해부’ 시리즈도 국회의원과 정당의 이념적 차이를 드러내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판단 근거를 제공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의제와 기획을 선점하고 선도하는 면에서 일단 두각을 나타낸 셈이다.

‘3김 시대 언론’을 청산하겠다는 신년사와 세무조사의 교훈 및 언론의 권력화를 비판한 홍석현 회장의 시무식 신년사도 의미심장했다. 지난해 가판 폐지에 이어 동정란 폐지까지 기존의 관행적인 신문제작 방식을 개선하려는 노력 또한 남보다 한발 앞서 시도되고 있는 게사실이다.

이같은 중앙일보의 행보는 홍석현 회장이 올초 신년사에서 밝힌 ‘일류신문 만들기’의 구체적인 실천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홍 회장은 “1등을 흉내내선 1등이 될 수 없다”며 “경쟁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열린 보수언론, 우리만의 색깔과 얼굴을 가진 신문”을 강조했다. 홍 회장은 따라서 올해 경영 목표도 ‘일류신문을 향한 시스템 정비’로 집약했다.

중앙일보가 승부하고 있는 ‘1등 전략’은 조선일보를 따라가지 않는 중앙일보만의 스타일 확립, 기획기사로 승부하는 ‘고품질’ 전략, ‘열린 보수’로 지칭되는 균형있는 논조, ‘독자중심’의 기사 발굴로 모아진다. 이에 대해 이장규 편집국장은 “우리가 긍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더 나은 신문’ ‘좋은 신문’”이라며 “일류신문이 무엇이냐라는 관념론적인 논쟁은 불필요하다. 어제보다 나은 신문, 오늘보다 나은 신문을 만든다는 구체적인 실천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선긋기 아닌 개성 찾기

중앙일보의 변신이 ‘1등’ 고지를 차지하려는 단순한 ‘조선과의 차별화·선긋기’ 전략이라는 외부의 평가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했다. 이 국장은 “특정 신문과의 선긋기로는 자기 스타일의 차별화를 만들 수 없다. 조선일보가 이렇게 가니까 우리는 이렇게 간다는 발상은 재미도 없고 한계가 있다”며 “과거의 한국 신문 제작 행태로부터 달라지기 위한 모험과 시행착오, 다원화된 독자의 의견을 선입견 없이 수용하는 열린 시각이야말로 진정한 차별화”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어젠다 위원회’를 가동시켜 10개의 국가과제를 추려내고 1월 1일부터 관련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이번 시리즈가 끝나면 2차로 후속 국가 아젠더를 제시할 계획도 갖고 있다. 홍 회장은 신년사에서 “일류신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는 신문이 돼야 한다”며 10대 국가과제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난 98년부터 기획취재팀 활동으로 쌓인 노하우 및 양질의 기획기사로도 상품성을 키울 수 있다는 교훈이 중앙일보의 지면 차별화 전략으로 이어졌다는 게 기자들의 해석이다.

요즘 편집국 기자들은 간부들로부터 “기존 관행을 버리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주문이 독자 중심의 기사 발굴. 정치부 한 기자는 “일례로 한나라당이 공급하는 기사, 이회창 총재가 주는 기사를 쓰지 말고 독자가 궁금해하는 기사를발굴하라는 요구가 많다”며 “이회창 대세론 해부 기사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거보도와 관련 홍 회장의 ‘불편부당’ 선언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치부의 한 기자는 “지난 97년 대선 때 쓴맛을 본 뒤로 이번엔 정말 중립을 해보자는 홍 회장의 실천 의지가 상당한 것 같다”며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지만 과거와 같은 지역감정과 이념 갈등을 조장하는 논조와 3김 언론 행태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위는 뛰고 아래는 걷고

‘일류신문 만들기’라는 홍 회장의 개혁 드라이브에 기자들은 큰 틀에서 동의하고 있지만 위로부터의 개혁에 대한 불만과 우려도 없진 않다. 편집국 한 기자는 “홍 회장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감각이 탁월하고 아이디어는 내놓되 최대한 개입하지 않으려는 점을 높이 산다”면서도 “중앙일보 개혁의 7할 이상을 홍 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부족한 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예전처럼 신문 만들면 편하다. 10대 국가과제 시리즈를 1면에 계속 배치하면 ‘니들은 참 한가하다’ ‘맥 빠진다’ 등등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오고 가판과 동정란을 폐지하면서 기자들의 업무는 더 고되졌다. 독자들의 지지가 없으면 이런 모험은 오래가지 못한다. 다행히 독자들의 평이 좋아 용기를 얻고 있다.”

‘1등’ 고지를 향한 중앙일보의 다음 차별화 수는 무엇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