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경향신문 기자들은 2대 직선 편집국장으로 강기석 경영기획실장을 선출했다. 강 실장의 편집국장 당선 의미는 남다른 바가 있다. 2000년 2월 첫 직선에서 고배를 마셨던 전적 때문만은 아니다.
88년 초대 노조 부위원장이었던 강 실장은 당시 럭키금성과 합작 협상에서 불거진 경영진 퇴진운동, 5공청산특위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듬해인 89년, 한화와 합작을 추진하던 경영진들은 초대 노조 집행부 5명을 강제 해직시켰다. 강 실장은 이른바 ‘경향 해직5인’ 중 한명이었다. 92년 복직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강 실장은 이제 편집국 사령탑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14일 만난 강 실장은 선거 과정에서 표방한 ‘설득하는 진보, 부드러운 개혁’이라는 모토에 대해 “우리 신문의 지향과 관련 ‘중도 좌’, ‘중도 우’ 등 다소 모호한 개념에서 벗어나 진보와 개혁이라는 성격을 확실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 실장은 “수구를 경멸하고 급진을 두려워하는 양심적인 30~40대 독자층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이 사회에서 다만 10% 혹은 20% 정도라 할지라도 그들을 확실한 기반으로 삼아 언론의 제 역할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철학과 독자층을 바탕으로 구현할 지면의 상은 ‘위대한 저널리즘’으로 표현된다. ‘알아야 할 것을 알리겠다’는 도전적인 지면제작 방침이다. 강 실장은 “‘위대한 저널리즘’은 퍼블릭 저널리즘이나 쌍방향 저널리즘의 대칭 개념”이라며 “중요한 점은 인쇄매체는 디지털매체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보수적인 대중들의 요구나 이해에 영합해서 지면을 만들고 있다. 단순히 독자들이 원하는 뉴스를 서비스할 것이 아니라, 사원주주회사로서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우리의 시각으로 독자들이 알아야 하는 뉴스를 전달하겠다.”
강 실장은 편집국 운영에 대해서도 의례적인 물갈이식 인사가 아닌 적재적소 인력 배치, 10년차 이하 기자에 대한 내·외근, 인기부서·기피부서 순환 원칙 등을 강조했다. 일선 기자들에겐 적절한 동기 부여와 부서 이기주의 타파를, 간부들에겐 보다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하겠다는 것. 외형적으로는 스포츠·재테크 섹션을 신설, 3섹션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강 실장은 ‘설득하는 진보, 부드러운개혁’이라는 철학과 ‘위대한 저널리즘’이라는 영역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바를 ‘가치 있는 생존’이라고 설명했다. 언론개혁과 관련해서도 “경향신문 같은 매체가 여론 독점을 방지하고 여론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역할을 한다면 그 자체로 굉장히 크고 유의미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언론으로 재출범한 이후 두 번째 경주를 시작하는 경향신문이 앞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