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언론을 대상으로 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공동회견을 놓고 한국 언론이 불필요한 과열 경쟁을 벌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본과 중국 언론의 경우 각국을 대표한 풀 기자 개념으로 공동회견에 참여하고 있는 반면 한국 언론은 백악관 회견 때마다 워싱턴 기자단 사이에 과열경쟁으로 논란이 빚어지고, 선정된 언론사는 ‘사세과시용’으로 과장된 보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3개국 순방에 앞서 지난 16일 새벽 4시55분(한국시간) 한·중·일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한국에서는 중앙일보와 KBS를 선정했다. 부시 대통령은 먼저 중앙일보 아사히신문(일본) 신화통신(중국)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홍콩) 등 4개 언론사와 공동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KBS NHK(일본) CCTV(중국) 등 방송사와 각각 5분씩 인터뷰를 가졌다.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16일자 마감 이후에 회견이 이루어지면서 중앙일보는 16일자 신문에는 ‘부시 인터뷰 내일 게재’라는 사고만 싣고 회견 내용은 17일자에 4개 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30여분간 이루어진 이날 회견에서 4개 언론사에 배당된 질문은 각각 3개였던 점을 감안할 때 과도한 보도가 아니었느냐는 지적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 이마의 주름살은 5∼6개였다. 보통어조로 말할 때는 5개지만 강조할 때는 맨 위로 하나가 더 생겼다. 맨 아래 주름살은 중간에서 끊겨 있었으며…” 등 아무리 스케치 기사라고 하더라도 지나쳤다는 것이다.
또 당초 일요일인 17일자 신문 발행 계획이 없었던 동아일보가 갑자기 17일자 신문을 발행하기로 하고 ‘부시 3국 순방회견’이라는 제목으로 3개 면에 걸쳐 보도한 것도 중앙일보를 의식한 것이었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는 한국 언론 가운데 중앙일보가 참여했다는 설명도 하지 않아 가판 신문을 발행하지 않는 중앙일보에 앞서 ‘물타기’를 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이같은 과열경쟁이 심화되면서 워싱턴 특파원간의 마찰도 반복적으로 발생되고 있다. 이번 부시 대통령 회견을 둘러싸고도 중앙일보와 KBS가 선정된 데 대해 워싱턴 특파원들은 주한 미대사관에 항의하는 등 크게 반발했다.
한 언론사 워싱턴 특파원은 “지난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방북 당시 풀 기자단으로 참여했던 4개 언론사 가운데 이 두 언론사가 포함돼있었으나 당시 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워싱턴기자단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빚어졌는데 이를 잘 아는 주한 미 대사관이 이 두 회사를 또다시 추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있었던 부시 대통령의 한·중·일 공동기자회견 때는 한국 신문의 과열경쟁을 잘 아는 백악관이 중국과 일본의 경우 인민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을 선정한 반면, 한국에선 통신사인 연합뉴스를 선정하면서 큰 마찰이 빚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시 연합뉴스가 3개국 공동회견을 ‘단독회견’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워싱턴 기자들 사이에서 ‘사세과시’라는 지적을 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한 언론사 부장은 “중국 언론은 관영매체로 성격이 다르지만 일본 언론만 해도 풀 개념으로 회견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전에 질문까지 협의할 뿐 아니라 우리 언론처럼 ‘단독’ 보도라고 과시하며 과장보도를 하지도 않는다”며 “한국언론의 이같은 사대주의적 관행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다음에 선정되는 언론사도 ‘단독회견’을 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코미디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미영 기자 mypark@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