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설 연휴의 뒤끝을 뒤숭숭하게 만든 탈북 귀순자 유태준씨의 ‘거짓말 소동’은 북한·통일문제를 다뤄온 기자들에게 또 하나의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 단지 한 탈북자가 털어놓은 부풀려진 무용담 때문이 아니라, 이를 아무런 검증절차 없이 그대로 받아쓰기에 바빴던 우리 언론의 일그러진 자화상 때문이다.
“국가안전보위부 감옥의 철조망을 뛰어 넘었다”는 유태준씨의 재탈북 경위 증언과 관련해 지면을 통해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했던 필자지만 결국 이런 책임에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때 탈북자의 증언 한마디만으로 “북한이 핵폭탄 2~3개 분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보도를 날렸던 우리 언론이지만, 몇 해 전부터는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북한 200만∼300만명 아사” 주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분석을 토대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번에 한 평범한 탈북자의 말 한마디에 우리 언론이 놀아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세몰이식 대북 보도와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의 관행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재탈북해 입국한 유태준씨를 가장 먼저 접했다고 하는 조선일보나, 경위야 어쨌든 제일 먼저 유씨를 언론에 타도록한 연합뉴스 모두 곤혹스러운 입장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다른 탈북자의 입소문만으로 ‘유태준 처형’을 보도하고, 평양방송이 그의 기자회견을 내보낼 때조차 ‘북한을 믿을 수 없다’고 몰아붙이던 데서 이미 이번 오보소동은 예견됐다 할 수 있다.
지난호 기자협회보는 언론이 유씨에 대한 합동신문을 주도한 국가정보원에 화풀이를 했다고 했지만, 탈북자의 거짓 증언과 언론의 오보소동이 벌어지던 29시간동안 국민을 상대로 한 ‘합작 사기극’을 사실상 방관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20개월간 북한에 억류됐던 그가 입국 사흘만에, 취재기자들과 일문일답 상황에 내몰렸을 때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을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론의 대북 취재·보도 시스템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었으면 한다.
북한은 하나의 국가체제다. 게다가 관련정보는 대개 폐쇄적이고 정부당국의 자료도 언론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 또 이를 소화하는데도 적지 않은 전문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전문기자의 양성이 절실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이런 바탕 위에북한에 대한 냉전적 시각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한탕주의식 보도에서 탈피해야 한다. 탈북자 보도도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정서를 이해하고 취재된 첩보수준의 내용은 전문가 등을 통해 걸러내 정보로 만드는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