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일간지 첫 여성 사장, 첫 여성 논설실장, 스포츠지 첫 여성국장, 시사주간지 첫 여성 편집장, 첫 여성 경제부장….
언론계에서 오랫동안 남성들의 영역으로 자리잡았던 분야에 최근 들어 여기자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김운라 KBS 보도본부 해설위원이 창원방송총국장으로 임명되면서 첫 여성 총국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언론계에 여풍이 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21세기에도 여기자에게 ‘첫’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야 하는 현실은 여기자가 무엇을 하기엔 아직도 어려움이 있음을 웅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기자들의 현실은 어떻게 달라져왔고 현 주소는 어디일까.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계기로 권태선 한겨레 민권사회1부장, 김경희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성숙희 경남일보 문화특집부장, 최춘애 KBS 경제부장의 이야기를 통해 ‘여기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조명해봤다.
“내가 77년 입사였는데 당시 여기자를 공개 채용하는 일은 정말 드물었어요. 지원 자격부터 여성은 아예 안되거나 뽑더라도 양념 성격으로 한두명이었으니까. 여기자는 교수 추천서까지 받아야 했어요”
77년 중앙매스컴 첫 여기자 공채 출신인 최춘애 KBS 경제부장 이야기. 당시 여기자는 결혼 임신 출산 등으로 장기근속을 하지 못하는, 따라서 투자한 만큼 뽑지 못하는 ‘비생산적 인력’으로 인식돼 채용 과정부터 공평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승진과 부서 배치 ‘유리벽’
남자 기자들에게는 필요없는 교수 추천서까지 제출하며 어렵게 언론계에 입문한 여기자들은 입사 뒤에도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언론계의 일반적인 훈련 과정인 경찰기자를 하지 않고 곧바로 문화부 등으로 배치되기 일쑤였다.
“당시 몇몇 일간지 여기자들은 경찰기자 시켜달라고 데모도 했어요. 기자 생활에서 경찰기자 트레이닝을 얼마나 잘 받았느냐가 중요하고, 또 타사 기자들과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여기자를 똑같은 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앙념, 구색으로 여기니까 문화부, 편집부, 교열부, 외신 등으로 한정시켰던 거죠. 80년대 중반 들어서야 여기자들도 비로소 경찰기자를 할 수 있게 됐어요.법조나 정치부에 배치된 것도 이맘때 쯤이죠.”(최춘애 부장)
여기자가 숙직근무를 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KBS의 경우 90년대 초 여기자들이 남자들과 똑같이 숙직을 하겠다고 요구, ‘투쟁 끝에’ 시작됐다. 당시 간부들은 ‘여기자들을 숙직시키면 도대체 어떤 일을 시켜야 되는지’를 고민했고, 여기자들은 ‘똑같이 기자로서 업무를 주면 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자들이 그냥 ‘기자’라는 일상 업무를 수행하는 것 자체가 당시엔 ‘힘겨운 투쟁’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공평하고 균등한 경험의 기회가 차단되면서 여기자들은 결국 승진에서도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여자가 뭘 제대로 하겠냐’는 편견 역시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과 ‘유리 벽’으로 존재했다. 이런 현실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여기자들의 이야기다.
권태선 한겨레 민권사회1부장은 “우리 때는 여기자가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로 가는 게 정말 힘들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남녀가 동등한 실력이면 그냥 남자를 배치하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결국 여기자는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적어 그만큼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승진에서 남자 동기, 후배들보다 뒤쳐지는 경우가 있다. 김경희 일간스포츠 편집국장은 4년 아래 남자후배가 직속 부장으로 왔을 때 사흘간 출근도 안하고 고민하다 “이대로 그만둘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겨 다시 돌아왔다. 권태선 부장도 직속 선배로 온 남자 후배의 능력을 인정할 수 없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여기자에게 관련 부서에서 전문성을 쌓을 기회를 주지 않다가 갑자기 필요하다며 배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자는 일도 못하고 팀웍을 해친다며 거부하던 부서에서 어느날 여기자가 취재원과의 관계도 부드럽게 잘 맺고, 잔잔하게 기사도 잘 쓴다며 달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여기자들에게 기회도 안주고, 키워놓지도 않았으면서….”(김경희 국장)
또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여성이 뒤쳐지는 건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아직도 팽배하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학연, 지연 등의 남성중심적인 인맥관계가 여성들에게는 그다지 보편적인 문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편집국장단, 사회부장단 등의 모임에 여기자가 등장하게 되자 남성들도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해했지만 점차 일로 부딪히면서 여성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분위기라고 한다. 여성 부장, 여성 국장들은 그래서 각종 모임에 빠지지 않으려고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
권 부장이 80년 한국일보에서 해직된 뒤 한겨레 창간 멤버로 신문사 복귀를 결정할 때 가장 크게 고민했던 것은 육아 문제. “신문사 일도 힘든데 아이까지 키우려니 정말 너무 힘들었다. 당시엔 결혼 안한 선배들이 부러웠다.”
70∼80년대만 해도 여기자는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은연중 그만둬야하는 분위기였다. 아이를 날 때마다 사표를 썼다가 회사가 다시 불러 복직을 반복했던 한 여선배의 사례는 이미 여기자들 사이에선 전설같은 이야기다. 한 언론사에서는 직장 동료와 결혼한 여기자가 자매지인 스포츠지로 옮겨야 했고, 어떤 언론사는 출산을 앞둔 여기자 때문에 휴가 처리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성숙희 경남일보 문화특집부장은 “90년대 초만 해도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압력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결혼하면 그만둬야할 것 같은 분위기는 있었다”며 “남자 동료들도 ‘아직 다니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등 조직에서 ‘오래 가겠냐’는 인식을 하고 있으니 여기자들이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악조건’은 80년대 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여기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육아문제가 여전히 사회적 도움 없이 개인 부담으로 존재함으로써 여기자들이 맘껏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도 있는 후배가 출장을 스스로 지원하고, 인터뷰 성사시키려고 새벽까지 애쓰고, 아이 때문에 밤 잠 설쳐가며 일하는 걸 보면 안쓰럽죠. 남녀가 똑같이 잘하면 주목받지 못하지만 같이 못하면 ‘여자라서 그렇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그런 소리 안들으려고 이를 악무는 게 여기자들이예요”(김경희 국장)
아직도 여기자들은 남자 기자들보다 두배, 세배는 더 열심히 해야 동등하게 평가를 받는다는 소리다. 한번 실수하면 훨씬 더 주목을 받고 혹독한 질책이 가해지기 때문에 여기자들은 빈틈,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더욱 이를 악물고 버티게 된다.
두배 세배 잘해야 겨우 인정
“여기자들은 남자보다 적어도 두배 이상은 노력해야 동등하게 평가를 받습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어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지만 나쁜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아버텼어요.”(성숙희 부장)
이처럼 여기자들은 남자 기자들에 비해 두배, 세배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악조건’에 놓여있고, 차별은 많이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편견은 여전히 뿌리깊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여기자들의 숫자가 많이 늘었고, 사회적으로도 일과 기능, 능력으로 평가하는 시대가 되면서 여기자들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최춘애 부장은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든든하다”며 “앞으로 자기 특성에 맞는,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 국장은 “이제 여기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불이익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며 “전문기자, 대기자로 전망을 잡고 있다면 상관없지만 부장, 국장 등 관리자로 일할 생각이 있다면 사회적 인맥을 보다 풍부하고 건전하게 형성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